이종필
2023/05/28
간호사가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욱신거렸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염증이 심해 수술하는 데 애를 먹어서 시간이 40분 정도 초과됐다고 한다. 병실로 돌아온 뒤 얼마지 않아 주치의가 조그만 통을 내게 선물로 건넸다. 작은 콩알 크기의 담석이 여러 개 담겨 있었다. 

‘이젠 나도 쓸개 빠진 인간이 됐구나.’

수술 부위가 아픈 와중에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물을 마시기 시작한지 얼마지 않아 저지방식 병원식사가 제공됐었는데 이날은 저녁까지 금식이었다. 이제는 수술에서 회복하고 퇴원할 일만 남았다. 아직도 염증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서 주치의가 퇴원시기를 확정하진 못했다. 

퇴원 일정이 다가올수록 병원에서 보낸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참 얄궂게도 훗날 언젠가는 내가 여기 입원했던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이 처음은 아니었다. 20년쯤 전 군대에 입대했을 때에도 그랬었다. 나는 전문연구요원(일명 병역특례)으로 군 복무를 마쳤는데 박사과정 말년에 4주 군사훈련에 들어갔었다. 학위논문 심사가 끝난 뒤 인쇄를 맡겨 놓고 논문 제출은 후배에게 부탁하고는 한겨울에 논산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소라는 게 여름이면 여름이라 힘들고 겨울이면 겨울이라 힘든 곳이다. 하필 내가 훈련기간 동안에 논산 일대에 수십 년 만의 폭설과 수십 년 만의 한파가 찾아와 더 힘들었다. 퇴소하고 한 달 뒤에는 박사를 졸업하고 11년을 머물렀던 학교를 떠나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하기로 돼 있었다. 사람 심리라는 게 참 묘해서 훈련소 퇴소일이 다가올수록 희한하게 사회로 다시 복귀하는 게 조금씩 무서워졌다. 훈련소 생활이야 힘들긴 해도 그냥 아무런 고민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구르기만 하면 되니까 세상만사 복잡한 생각은 다 사라지고 인생이 아주 단순해진다. 이제 퇴소하고 사회로 복귀하면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나 혼자 저 무시무시한 세상과 맞서야 한다. 그때 내 나이가 만 29세였다. 11년 다니던 학교를 떠난 다는 두려움과 나이 서른이 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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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물리학자입니다(jongphil7@gmail.com). 유튜브 채널 “이종필의 과학TV”(https://c11.kr/1baom)도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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