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문화'와 '뒤통수 사회'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7/21
갑을 문화와 뒤통수 사회.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뱅크

‘갑을(甲乙)’, 그보다 못한 ‘병정(丙丁)’의 세상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갑’은 힘을 가진 자이고, ‘을’은 힘을 가지지 못한 자로 혹은 ‘갑’은 주류이고 ‘을’은 비주류라고 보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분야,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갑과 을’의 형태는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류는 비주류보다 숫자가 많은 다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숫자가 적은 쪽이 주류가 되고 갑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비록 숫자는 적어도 상대적으로 힘이 세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변화된 ‘갑과 을’의 관계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는 갑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라도 또 다른 곳에서는 을이 될 수도 있다. 또 그보다 못한 ‘병정(丙丁)’이 되는 수도 있다. 지금도 우리 모두는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똑같은 상황을 두고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대부분 ‘갑’과 ‘을’의 상황은 만만하지 않다. 협상을 통해 원만한 계약이 성립된 상태에서도, ‘갑’과 ‘을’이 확정되면 ‘갑을관계’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처럼 변한다. 숫자는 적어도 힘이 센 짐승이 자신보다 힘이 약한 짐승을 먹이로 삼고, 힘이 약한 짐승은 자신보다 더 힘이 약한 짐승을 먹이로 삼는다. 그리고 연약한 초식동물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자신의 온몸을 희생하는 풀들을 먹이 삼아 생명을 유지한다. 가장 숫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름 없는 풀들은 온몸을 그대로 내맡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다수 ‘병정’ 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을’의 희생 없이, ‘병’과 ‘정’의 존재 없이는 절대로 ‘갑’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을’을 지나치게 희생시켜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면 결국 ‘갑’도 살아...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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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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