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통신 4-구글 맵과 멱살 잡고 싸울 뻔

박산호
박산호 인증된 계정 ·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2023/08/18

여행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끊임없이, 아무런 변화 없이 이어지던 일상의 한 조각을 뭉툭한 칼로 잘라 낯선 공간, 낯선 세계에 내동댕이치는 것과 같다. 그 새롭고 낯선 세계에서 여행자는 막 태어난 신생아처럼 허우적거리며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곳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그가 불안한 이유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올 때 미처 따라오지 못한 영혼의 부재를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행의 속도는 극히 세심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내 영혼이 나를 따라잡을 때까지. 




드디어 혼자서 런던 시내로 출격이다! L은 물가에 아이를 내어놓은 것처럼 어리바리한 내가 혼자서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나가는 게 영 미덥지 않은지 마치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집에서 기차역까지 걸어서 15분이면 갈 거리를 설명해주고, 어디서 기차를 타야할 지 일러주고, 소매치기를 만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해줬다. 나는 기대에 부응해 무사히 목적을 달성하게 오겠다고 맹세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집을 나섰다. 



영국에 도착한 날은 기온이 13도 정도에서 비가 자주 내려 초가을처럼 쌀쌀하고 추웠는데, 런던을 향해 홀로 출발하던 날은 아침부터 21도로 올라가더니 기차역에 도착할 즈음 24도로 올랐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기차역까지 걸어오느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배인 채 뉴몰든 기차역에 도착해서 개찰구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신용카드를 자신만만하게 대는 순간 고난이 시작됐다. 이 카드는 쓸 수 없다고 너무나도 냉정하게 가위표로 거절 표시가 뜬 것이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길까 봐 한국에서 신용카드 회사마다 전화를 걸어서 영국에서 교통카드로 쓸 수 있냐고 물어서 분명히 된다고 하는 카드를 챙겨왔건만! 막상 영국의 개찰구는 내 카드를 너무나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플라스틱 칸막이 너머에 있는 두 명의 역무원을 향해 걸어갔다. 한 사람은 흑인이었고, 한 사람은 백인이었는데 둘 다 할아버지였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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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좀 특별한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일, 철학,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 시리즈.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우주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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