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화백이 남긴 것: 업적과 논란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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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By 김영주 alookso 에디터

지난 14일 오전, 박서보 화백이 타계했다. 향년 92세.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아흔이 넘도록 붓을 놓지 않았다. 네 살 아들의 한글 연습을 보며 선을 반복적으로 긋는 ‘묘법’을 착안했다. 1970년 시작한 연필 묘법은 지그재그 묘법, 색채 묘법 등으로 변화했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온 그는 꾸준히 화업과 사회 활동을 병행해왔다. 그의 생애와 주요 활동을 현대미술사의 전문가와 함께 따라가 보자.


🎨박서보 화백의 업적은?

그는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단색화’의 선구자로 한국 추상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행정가 또는 교육가로 미술 발전에 공헌했다는 게 근거다. 전문가들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 “현대미술의 변천을 주도”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박서보 선생은 일제 영향이 짙었던 기존 구상화단의 흐름을 크게 바꿨다. 한국 현대미술의 변천을 주도하고 이끌어 온 분이다. 여러 화풍을 거쳐 단색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서양에서 말하는 ‘모노크롬’이 한국에선 단색화라고 불린다. 정상화, 정창섭 작가도 유명한데 한국에선 박서보 선생이 모노크롬의 대표주자로 통한다.

  • “교육·행정 분야에 기여”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홍익대 서양화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80년)으로 재임하며 미술 행정가로 이런저런 일을 했다. 특히 1972년에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정착되는 데 기여했다. 이 법은 대형 건물 앞에 미술 장식품을 설치할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다. 박서보 선생은 이 법이 잘 자리 잡도록 노력했지만, 행정가로서의 이런 노력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2019년, 작품 ‘묘법 No.190227(2019)’ 앞에 선 박서보 화백. 분홍·회색 바탕에 유백색 물감을 얹고 마르기 전에 연필로 무수히 그어 완성했다. 10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도와주는 이 없이 처음으로 오롯이 혼자 이뤄낸 작품. (출처: 연합뉴스)

1950년대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에는 '국전'으로 알려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상이 화가 등단의 대표적인 창구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주도했던 '조선미술전람회'를 본따 만든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기성세력은 일본 화풍의 작품을 주로 선정했다. 이에 반발한 박서보 화백과 그의 동료는 1956년 '반국전 선언'을 하고 그들만의 전시를 연다.

  • “박 화백의 반국전 선언문이 기폭제”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박서보 선생을 위시한 젊은 작가 중심으로 국전에 대한 반발이 커져 갔다. 1954년 국전에 떨어진 미술가들이 ‘낙선전’을 열었다. 1960년부터는 덕수궁 바깥 돌담을 전시장 삼아 작품을 걸었다. 박서보 선생과 그의 동료들이 반국전 선언문을 내고 4인전을 연 것이 기폭제가 됐다.

1950년대에는 전위적 성격의 앵포르멜 운동을 펼쳤다. 앵포르멜(Informalism)은 정해진 모양이 없다는 뜻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이다. 포트리에, 뒤뷔페가 유명하다. 박서보 화백의 <회화 No.1 - 57>로 한국 최초 앵포르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 “프랑스서 직접 본 앵포르멜 들여와”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에서는 ‘앵포르멜’, 미국에서는 액션페인팅으로 ‘추상표현주의’가 나타났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인간 야만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전쟁의 상흔으로 실존주의 경향이 짙어졌다. 한국에서 새로운 그림에 목말랐던 사람끼리 그린 그림이다.
앵포르멜이 국내에 전해진 시기는 1950년대 후반이다. 미군 부대를 통해 <Life> 잡지가 들어왔고, 일본의 <미술 수첩> 같은 잡지 역시 소개됐다. 박서보 선생은 1961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청년화가대회에 참가하면서 프랑스 앵포르멜을 접했다. 그것을 한국에 소개하며 원형질 시리즈를 내놓았다. 그다음에는 서양의 조형 어법과 재료로 서양 그림을 그린다는 데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아 유전질 시리즈를 냈다. 유전질 시리즈는 기하학적인 추상에 한국적인 색동이나 단청 요소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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