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장의 사치스러운 선택 : 기생충(2019)
2023/03/09
봉준호의 역대 작품들에는 교양으로 아름답게 치장된 그룹들의 전형을 깨부수는 장치들이 늘 있었다. <살인의 추억>의 유력한 성범죄 용의자는 집에서 단파 라디오를 듣는 (아마도 386 운동권일)지식인이었고, <마더>의 줄거리는 소위 목가적인 촌락공동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촌극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옥자>는 생태주의자들이 실은 얼마나 자의적인 휴머니즘의 좁은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우회적으로 까는 영화였다(영화 마지막에 미자가 구하는 건 옥자이지 그 '종' 전체가 아니다). 이번 영화에선 그 예봉이 계급으로 옮아갔다. 그리고 봉준호가 늘 그랬듯이, 이 영화는 상류층의 천박함만큼이나 하류층의 천박함도 봉테일의 이름에 걸맞게 깨알같이 그려진다. 가난한 민중의 선하고 타오르는 생명력 같은 건 이 영화에 안 나온다. 이 영화는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은 물론이고, 비슷하게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등쳐먹는지에 대한 묘사로 가득하다. 그런 경우를 실제가 아니라 정녕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해보았다면, 당신은 진실로 운이 좋았던 사람이다.
빈부의 차는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기에, 이 영화가 묘사하는 가난에 대해 이따금 버튼이 눌린 사람도 있는 듯하다.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해석은 관객의 권능이니, 그런 반응들 또한 작품 내적으로든 관객의 입장으로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내 입장을 말한다면, 나는 이 영화가 가난을 질척하게 묘사함에 있어 오히려 좀더 나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가령 성매매집결지에서는 외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패악질(방화, 칼부림, 이불에 똥싸기, 끊임없이 돈을 빌리고 안갚기 등)이 성매수자 남성에 의해 일어난다. 그건 당연히 가부장제, 즉 남성과 여성의 젠더 권력차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그와 '더불어' 그곳에 드나드는 남성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하위 계층이라는 점에도 일정 부분 기인한다. 물론 그런 행위들에 계급...
『사랑의 조건을 묻다』(숨쉬는책공장,2015),
『세상과 은둔 사이』(오월의봄,2021),
『불처벌』(휴머니스트,2022,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