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평가받는 요즘 세대의 연애
2023/06/09
십 대 중반인 A는 담임교사와 상담을 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교사는 친구를 좀 사귀었냐고 매번 묻는다. 친구 숫자가 학기 초에 비해서 늘어났는지를 궁금해한다. 아니라고 답하면, 질타로 느껴질수 밖에 없는 말들이 이어진다. 십 대의 시선에선, ‘친구가 없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야’라고 들린다. 교사의 미묘한 태도를 A는 경험적으로 안다. 매번 비슷비슷한 상담을 해서다.
친구의 숫자는 관계의 원만함과 무관하다. 외향적인 사람이 성격까지 좋다면 주변에 사람이 많을 순 있지만 그 경향성을 지나치게 신뢰해 ‘많고 적음’으로 모든 사람을 재단해선 안 된다. 친구가 많은 걸 싫어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떤 개인적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많은 게 싫어서다. 오히려 끼리끼리 끈적하게 뭉쳐있는 이들이 그 힘을 이용해 남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A를 짜증 나게 하는 인간들도 그랬다. A가 그들과 다투다가 들은 가장 황당한 말은, “그래서 어쩌라고, 너는 친구도 없잖아”였다. 친구 있는 걸 ‘좋은’ 관계 자체라고 해석하는 게 습관적인 사회에선 이처럼 황당한 무례가 넘쳐난다.
잘 되고 싶은 간절함에서 잘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2000년대 전후로 관계 맺음의 특징이 달라졌다는 건 문화연구자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사회가 까칠해지면, 개인도 까칠해질 수밖에 없음이 부단히 증명되었다. 집단 따돌림이 외환위기 이후 구체화된 것도 사실이고 그 연료는 지금 학교폭력의 큰 원인 중 하나다.
그러니 ‘걱정하는 마음’도 커진다. 보호자들은 내 아이에게 친구가 많으면 일단 안심한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없는 학생을 찾아내고 상담한다. 여기서 ‘없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신호를 주면 좋겠지만, 실제는 좀 잔인하다. 원인이 당사자에게 있다는 분석이 등장하고 앞으로 달라져라는 개선책이 요구된다. 그러니 인간관계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가 아니라 ‘좋지 않은’ 게 된다. 또 인간관계에는 당연히 갈등상황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원만한’이라는 표현이 필요이상으로 부유하면 관계의 틀어짐을 개인의 결함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강해진다.
이 배경을 이해하면, 과거와는 다른 요즘 시대의 사랑풍토를 알 수 있다. TV만 틀어봐도 느껴진다. 늘어난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중심에는 ‘연인’이라는 키워드가 묵직하게 존재하는데 알콩달콩 사랑얘기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사랑‘하기 위한’ 이들의 온갖 고민들이 넘쳐난다. 상대의 반응 하나하나에 안절부절못하는 당사자의 모습이 등장하면 스튜디오에서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런 모습은 어떤 신호인지를 연애 전문가를 자칭하는 이들이 꾸짖듯이 설명한다.
표준어는 아니지만 누구나 사용하는 썸타다(something+타다)라는 표현은 ‘답이 없는’ 사랑 관계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강박을 대변한다. 썸탄다는 건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사귀듯 가까이 지내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는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니까, 혼란의 과도기는 혼란 그대로 느끼는 것이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었다. 저 사람과 잘 되고 싶은 간절함이야 있었겠지만, 잘 되어야 한다는 강박까지는 없었다. 잘 안 되는 것, 그것 역시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썸타다’는 2012년 경에 신조어로 등장했다. 그 전후로 썸에 주목하는 방송도 인기를 끈다. 연애를 경쟁의 영역에서 다룬 짝(SBS)은 2011년에, ‘그린라이트’(상대에게 호감이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라는 표현을 유행시킨 예능 마녀사냥(JTBC)은 2013년에 시작했다. 이후, 개인의 사랑감정을 대중과 공유하고 ‘평가받는’ 프로그램은 봇물처럼 늘었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라는 흥겨운 멜로디로 유명한 소유와 정기고의 노래 <썸>은 2014년에 나왔다. 사랑관계의 복잡 미묘함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연애경험 없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모태솔로라는 말의 맥락도 흡사하다. 2009년 12월 개그콘서트(KBS)의 ‘솔로천국 커플지옥’ 코너에서 개그맨 오나미의 캐릭터로 사용되었던 이 표현은 다분히 자학적이다. 연애 ‘안’하는 걸 ‘못’하는 걸로 쉽게 판단하는 사회에서 연애유무는 무엇인가 결핍된 존재임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니 욕먹을 바에 스스로 ‘모태솔로’라는 딱지를 먼저 사용하는 게 차라리 나은 선택이 된다. 재차 강조하지만, 연애경험 없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을 뿐이다. 중학생이 ‘모태솔로라고 놀리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건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
남자들 앞에 선 여자의, 여자들 앞에 선 남자의 이력이 쭉 나열되고 명문대 출신이라면서 부러워하고 자산이 대단하다면서 찬사를 보내는 모습은 예전에도 존재했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보통 사람의 일상적인 삶 안에서 사랑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개인적이기에 정답이 없었다. 지금은 그러한가? 사람들은 ‘공개 오디션’ 심사위원의 자세로 누군가의 사랑관계를 평가한다. 상대의 스펙이 저러하니 이 정도는 되어야지, 여자의 이 행동은 그 뜻이지, 남자는 별 수 없지 등의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사랑‘도’ 평가받는 시대에 사람들은 아예 사랑을 거부하고 연애 자체에 관심을 꺼버리기도 한다. 아이 있는 사람에게 용돈 주는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저출생 정책이 유의미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 것도 이 지점으로부터 출발하지 못해서다. 사랑을 해야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거다. 하지만 연애‘도’ 못하는 사람 어쩌고의 말들이 많은 곳에선, 못한다 소릴 들을 바엔 차라리 안 하는 사람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박효영 감사합니다. 이제 수정했네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근데 말미에 살짝 오타 있어요.
[하지만 연대‘도’ 못하는 사람 어쩌고의 말들이 많은 곳에선, 못한다 소릴 들을 바엔 차라리 안 하는 사람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연대가 아니라 연애가 맞죠?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에서 한 아동이 제게 불쌍하다 하더군요 솔로라고 하하하
평가의 일반화가 널리 퍼졌음이 실감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