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진짜 빌런과 해묵은 오해들

고요한 · 책 파는 영화애호가
2023/05/31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즈니의 실사영화<인어공주>의 악당은 누구인가. 전 세계 사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우르술라일까. 우르술라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 같다. 인간의 다리를 얻고 싶다는 에리얼의 소원을 들어준 죄밖에(?) 없기 때문이다. 3일째 일몰 전에 에릭과 키스를 하라는 조건도 상세히 설명했다. 계약의 정당성은 원작에서도 그대로 연출된다. 키스에 실패하고 에리얼이 우르술라에게 잡혀갔을 때 아틀란티카의 왕이자 에리얼의 아버지 트라이튼이 화가 나서 삼지창 공격을 하지만 계약의 효력이 발동되며 공격은 무효로 돌아간다.

물론 독소조항이 있었고 중간에 훼방을 놓긴 했지만 우르술라는 두 주인공과 심리적으로 대적하지는 않는다. <인어공주>에서 주인공들과 직접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인물은 우르술라가 아니라 그들의 각각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에리얼이 지상과 인간에 관심을 보일 때마다 트라이튼은 그녀를 꾸짖고 억압하며, 에리얼이 힘들게 모은 인간들의 물건을 파괴하기도 한다. 에릭의 어머니인 셀리나 여왕도 마찬가지다. 좁은 섬을 벗어나 세계와 교역하며 국력을 키우려는 왕자를 바다가 위험하다며 궁에 주저앉힌다.

영화 <인어공주>는 원작에서도 얼핏 드러났던 이 갈등이 더욱 도드라지고 바다와 육지로 확장되어 펼쳐진다. 같은 맥락에서 에리얼과 에릭이 마녀의 뜻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부/모와 품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선택과 증명의 과정이 작품을 해석하는 중요한 키워드로도 사용된다.


■ 에리얼에 대한 해묵은 오해

목소리를 뺏긴 에리얼을 에릭이 사랑하게 된 이유가 외모 덕분일까. 원작의 대사와 연출은 그런 인식이 해묵은 오해이자 편견임을 드러낸다. 에리얼에 의해 해변으로 옮겨진 에릭은 눈을 뜨자마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여인이 날 구해줬어요. 노래하고 있었죠.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였어요”

에릭이 에리얼을 처음 보게 되는 연출 역시 얼굴이 아니라 목소리를 기억한다는 그의 말에 힘을 보탠다. 해변에 누워있는 왕자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반면 해를 등지게 된 에리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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