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 랜드) 현재를 찾아 떠도는 이들의 서사시

하늘소풍06
2023/01/26
천지가 온통 새하얗게 꽁꽁 얼어붙어 있다. 초로의 한 여인이 어느 창고에서 자신의 차로 짐을 옮겨 담고 있다. 조금의 틈이라도 벌어지면 금세 터져 나올 것 같은 슬픔을 억지로 욱여넣고 억누르고 있는, 거칠고 주름진 얼굴의 여인은 짐의 일부는 창고에, 일부는 자신의 허름한 밴에 담고 길을 나선다. 이 여자는 왜 떠나는 것일까? 여자는 어디를 향해 떠나는가?
사진: 다음영화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세계 금융 위기는 많은 기업들을 파산으로 내몰았고, 이것은 연쇄적으로 서민들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이것은 특히 주택담보대출과 연관되어 시작되어 많은 이들을 빚더미에 앉게 했고 대출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으나, 현금이 풍부했던 일부 계층에게는 헐 값에 시장에 나온 부동산들을 사들일 수 있는 호재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네바다주의 엠파이어 역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는다. 금융위기로 인해 마을 전체의 경제를 움직였던 석고산업은 몰락했고 그 지역 전체는 사실상 유령도시가 되었으며, 심지어 우편번호마저 빼앗기면서 행정구역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엠파이어에 사는 사람들은 먹고살 수 있는 수단이 사라져 버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 이상 머무를 곳조차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여자가 떠나야만 했던 물리적인 이유였다. 여자는 자신의 선택으로 떠나야 했던 것은 아니다. 
사진: 픽사베이
내가 알던 내 삶에서 원치 않게 내쳐졌다. 내쳐지기 전의 내 삶의 질은 당장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알량한 목숨의 부지를 위한 실존적 몸부림에 있다. 여자의 거칠고 무표정한 얼굴처럼 여자의 삶 역시 표정을 잃었다. 추운 길바닥에서 그나마 바람을 막아주는 밴이 있기에 대충 한 끼를 때우고, 이 대충의 한 끼라도 확보하기 위해 일당을 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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