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최후의 밤, 서울의 밤

클레이 곽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는 사람
2023/02/09
요즘은 찾아보기도 힘들지만, 7080세대들은 LP레코드판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이 있을것이다.

맨처음 배운 팝송은 중2때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올리비아 뉴톤 존의
"Let me be there "였었다.
"만날때는 쉬었지만, 헤어질 땐 아쉬워 ~~"이렇게 개사가 되어 불리기도 했던 팝송으로
 라디오에선 거의 매일 들을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카펜터즈,비틀즈,사이먼 & 가펑클등의 음악이 유행이던 시절에
질 나쁜 LP레코드를 틀어보면, 항상 비내리는 소리 같은 음이 같이 녹음되어 있었고,
칼로 유리창을 긁는 듯한 " 끼끼끽"거리는 기분나쁜 소리는 LP전축의 바늘에서 나오는것인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음악을 들었었다.

행군대회로 명명된 소풍을 가거나, 수학여행을 갈때면, 삼삼오오 모여서 당시
유행하던  "gogo" 음악에 맞추어  고고춤을 추기도 했었다.
유신정국으로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없이 대중가요와 , 춤사위로
무엇인지 모를 답답함을 달랬었고,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살림살이는 나아졌지만,
우리모두는 미래에 대하여 엄청 불안해했었고 우울했었다..

용돈을 털어서 구매한  사이먼 & 가펑클의 노래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The Boxer"의 음울한 가사에 자신을 동일시 하여, 같이 어울리던 또래 친구들은
복싱선수가 되어 쉐도우 복싱을 하며, 마치 권투선수처럼 연신 개폼을 잡으며,
"아이엠 저스트 어 푸어보이(I am just a poor boy) "를 반복했었다.

노래가사속  뉴욕을 동경했고, 미국을 동경했고, 서울을 동경했었다.
뉴욕을 가기위해선 먼저 서울로 가야만 했던 우리들은 너무나도 쉽게
당시 서울대학교를 지칭하는 "관악캠퍼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고
노력만 하면, 까짓껏 서울대쯤은 그냥 들어가리라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그래도 시골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녀석들과 같이
떼를 지어 서울로 상경을 했고, 한달 반동안 하숙을 하며, 당시 종로 2가에 있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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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며 살지만 현실에서 항상 부끄럽게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살다보니 벌써 나이를 먹어서 거울을 보고 자주 놀랍니다.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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