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트리를 꺼내며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11/18
  매년 이맘때가 되면 숙제가 하나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놓는 것. 다락에서 지난해 정리해둔 트리를 주섬주섬 꺼내와 예년과 같은 곳에 하나씩 놓아둔다. 그러고 보니 창문도 닦아야겠다. 여기저기 벌레들이 머문 흔적들과 비바람이 남긴 자국들이 보인다. 햇살이 종일 내리쬐는 자리에서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계절마다 햇살의 느낌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여름의 쨍한 햇살에 비해 가을의 햇살은 빛 번짐이 있어 조금만 창문이 더러워도 금세 티가 난다. 해의 각도도 여름에 비해 낮아 더 깊숙한 자리까지 햇살이 드리워진다.  

  창문을 닦을 때에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부실한 손목 때문. 이리저리 손목을 돌려보다가 닦아도 장사를 할 수 있겠지 싶은 상태면 그제야 도구들을 챙긴다. 둘러보면 여기저기 온통 손이 해야 할 일이기에, 커피 장사와 육아로 부실해진 손목을 웬만하면 아끼려 한다. 당장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미루는 것. 그렇게 손목을 핑계로 나는 자꾸만 게을러진다. 그런 내가 몸을 일으켜 창문을 닦았다. 뭔가 뿌듯한데.

  희한하게 트리를 꺼내놓는 날은 유난히 햇살이 찬란하다. 트리를 꺼내놓아도 될까 싶을 만큼 따뜻한 날이어서 꺼내놓은 손이 좀 민망하다. 섬이다 보니 아무래도 육지보다는 조금 늦게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바람이 멈춘 날은 봄으로 믿어도 될 만큼 공기가 온화하다. 그런 날에 겨울을 상징하는 트리를 꺼내놓자니 이래도 되나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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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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