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언어를 배우면 지하 동굴 안에서도 동서남북을 느끼는 절대방향감각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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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ist96 · 호기심 많은 기후생태활동가이자 한의사
2023/02/14
고향 방언을 쓸 때와 표준어를 쓸 때, 한국어로 말할 때와 영어로 말할 때, 회사에서 회의할 때와 친구들과 말할 때, 쓰는 언어가 달라지는 코드 전환이 일어난다. 즉, 다른 페르소나, 다른 운영체계가 활성화된다. 
이렇듯 언어를 배울 때마다 새로운 페르소나를 장착하게 된다면, 더 나아가 새로운 능력까지 탑재할 수 있게 될까? 어떤 외국어를 배우면 예전에는 몰랐던 것이 갑자기 보이거나 이해되기도 할까? 부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페리윙클(periwinkle)이라는 색깔 이름이 있다. 연보라색 같기도 하고 옅은 하늘색 같기도 한 이 색깔 이름은 한국어에는 없다. 하지만 영어에는 있기 때문에 영어 사용자들은 페리윙클의 범위를 딱 집어낸다. 한국인들 눈에는 그 색깔이 그 색깔 같은데, 영어 사용자들은 여기서까지는 보라색이고, 여기서부터는 페리윙클이고, 여기서부터는 하늘색이라고 인식해낸다. 색 인식 능력은 동일하게 타고났겠지만 언어에 의한 자극으로 미묘한 구분이 가능해진 것이다.
러시아어에는 파랑이라는 단일한 단어가 없고 밝은 파랑голубой(골루보이)과 짙은 파랑синий(시니)이라는 두 개의 색깔 이름이 있다. 영어에는 파랑(blue)이라는 하나의 단어만 있다. 과연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파란색의 색조를 더 잘 구분할까?

https://www.pnas.org/doi/epdf/10.1073/pnas.0701644104
   
   
이 색깔표는 파랑을 진하기로 20단계로 나누어 놓았다. 인접한 색깔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여서 같은 색인지 다른 색인지 바로 알아차리기 힘들다.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사진의 9번 색깔쯤에서 골루보이(밝은 파랑)와 시니(짙은 파랑)가 갈린다고 느낀다. 실험 결과 카테고리가 같은 골루보이(1~8번)과 시니(9~20번) 안에서 색깔을 구분해낼 때보다, 골루보이와 시니로 카테고리가 달라질 때 더 빨리 다른 색임을 감지해내는 것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같은 골루보이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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