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없는 밤.

적적(笛跡)
적적(笛跡) · 피리흔적
2024/09/17
   
   
일요일 아쉬움으로 가득한 새벽의 기상과 잠시 흐릿한 정신으로 깨어있던 정오의 끈적이는 열기 속에서도 물에 흠뻑 젖은 신문지처럼 팔랑거리며 활자마다 기름 냄새가 납니다. 지지 않을 것처럼 밝던 햇살이 지고 나서야 휴일을 허투루 보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후회가 잠들 때 즈음 내일이 오지 않을 방법을 궁리하며 잠이 듭니다. 
   
숨 쉬는 동안 기어코 월요일을 맞이합니다. 진정한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흐린 하늘도 괜찮습니다. 심술 맞게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눈빛마저 따스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본디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산책하러 나갑니다.
늦고 나른하며 느긋하고 한산한 거리를 걷습니다. 그곳에도 혹시 바람이 불고 있나요?
   
가로수가 바람에 나부낍니다. 녹색의 잎들과 그 녹색에서 조명을 꺼버린 녹색이-잎들의 뒷면은 아직도 연둣빛에 가까운 것 같기도-드러납니다. 입술을 달싹여 발음하려던 말을 잠시 삼켜둡니다. 이제 막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히다 잠시 깨어난 아이의 가슴을 다독이는 지친 아빠처럼 한참 뒤에야 길을 걸으며 ‘가을’이라고 발음해봅니다.
   
같은 층에 사는 사내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사내가 먼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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