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5)> : 전국 장로기도회를 가다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5/01
부산행 열차가 수원역을 막 지났다. 김치성은 차창 밖의 해질녘 가을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허수아비가 군데군데 서있고 긴 새끼줄이 허수아비들 사이로 얼기설기 연결되었다. 그 새끼줄 사이에는 서낭당 금줄처럼 형형색색의 헝겊들이 묶여서 가을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요란한 기차의 기적 소리에 벼이삭 위에서 낱알을 쪼며 위태롭게 앉아있던 참새들이 놀라서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가 다시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쪽 하늘로 저무는 석양빛이 포근하고 들판이 왠지 넉넉해 보이는 게 금년에도 풍년이 들겠다는 생각이다. 멀리 들판 끝에 있는 동리에서 저녁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집들이 뿌옇게 보였다. 김치성은 눈을 감으니 낮에 있었던 <국가재건을 위한 장로기도회>의 젊은 설교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서 맴돌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는 새 시대를 맞이하여 조국의 모든 분야를 새롭게 재건하고자 합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엄중한 이 시국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는 국가정신을 따라서 한 치의 동요됨 없이 일치단결의 전선(戰線)에 맨 앞장 서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국 모든 교회는 이제 돌아가서 새로운 정부와 지도자의 성공을 위해서 기도에 힘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젊은 설교자의 우렁찬 설교가 끝나고 나니 여기저기서 “아멘! 아멘!”하는 목소리와 함께 어떤 이들은 “옳소! 옳소!”하고 박수를 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김치성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며 눈살을 찌푸렸다. 

부산 노회에서 올라 온 박성주 장로는 지나가는 열차 판매원의 수레를 붙들고 계란 두 꾸러미와 음료수 두 병을 샀다. 그리고는 김치성 앞에 계란과 음료수를 내밀었다.    
“김 장로님! 이 계란 좀 드시소!”
“아니! 박 장로! 뭐 이런 것을 다 사셨노!
그냥 두시지 않고! 아무튼 고맙네!”
“장로님!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 젊은 정치군인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았는데도 교회는 여전히 박수만 치는 노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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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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