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함구하지 않으려는... 천운영, 《반에 반의 반》
「우리는 우리의 편이 되어」
“너의 이런 면이 좋다.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좋아하는 립스틱을 꺼내 내 입술에 발라주는 순간. 그리고 다시 하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무심하게 숨을 참고 태연히 숨을 고르는 사이. 너는 안쓰럽게 따스하다.” (p.20) ‘너’는 친구의 딸이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너의 엄마는 삼십대에 예술대에 입학한 늦깎이 학생이었다, 너를 임신한 몸으로. 나는 이제 너를 인터뷰하며 너와 너의 엄마를 떠올리고, 너는 엄마의 친구이며 엄마가 되어 보지 못한 나에게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지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일련의 편견을 향하여 유약하지만 돌진하는 것 같은, 서툴러보이지만 멈추지 않는 진행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되어주오」
“... 마침 오얏꽃이 흩날리는 봄날이었다. 자두나무 아래서 술잔을 비웠지. 아버지와 한 상에 앉아 술을 배우던 날처럼 오롯했다. 여름이 되면 다시 와 자두 맛을 보자 약속했다. 자문 밖 자두 맛은 시고도 달콤하리라 생각했다. 완벽한 하루였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운, 오얏꽃 피던 밤이었다.” (p.67) 나는 그렇게 완벽한 날에 엄마의 몸에 들어섰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