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함에 대하여

ACCI
ACCI · 글과 글씨를 씁니다.
2024/03/03
얼마 전 나는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김치를 담갔다. 

고춧가루 대신 마른 통고추를 갈아 넣었기 때문인데, 잊을만하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씨들의 향연에 김치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김치에 붙은 노란 씨들을 하나씩 발라내면서 김치를 끝까지 먹었다. 맘에 들지 않는 맛을 끝까지 먹는 사람이 아니지만 끝까지 먹었다. 요즘의 나는 이런 사람이다.

포만감이 주는 안락은 이내 노곤함으로, 곧 나태로 흐르는 특징이 있었기에 나는 음식을 습관적으로 남기곤 했던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 나는 괴테가 자전거 안장에 앉아서 글을 썼던 이유를 공감하는 부류의 사람이었고, 나태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정진력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정진력은 덕력과도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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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음악, 인문, 산책에 심취하며 캘리그래피와 통/번역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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