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 마이 몰레!

채헌
채헌 · 짓는 사람
2024/04/04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첫 번째 외식은 멕시코 식당 레드 이구아나. 근방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곳답게 정말 사람이 많았고 테이블에 앉으려면 대기를 해야 했다. 나와 솔뫼는 바에 앉겠다고 하여 바로 착석. 구글맵 리뷰에 오래 기다렸다는 평이 많아 걱정했는데 과연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에는 대기 줄이 길었다. 타이밍이 좋았어, 럭키! 

앉자마자 나초칩이 나왔다. 이것은 거의 빛의 속도, 라고 생각했는데 주방 안쪽을 보니 나초칩이 담겨진 바구니가 어른 키만큼 쌓여 있었다. 나초칩만 내주고 메뉴판은 안 가져다주길래 점원을 부르려니 솔뫼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식당에 들어가서는 안내하는 점원이 올 때까지 서 있어야 하고, 자리에 앉아서도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관습이라고 했다. 메뉴판 받는 것도, 메뉴를 결정하고 주문하는 것도 내 마음이 아니고 점원이 알아서 와주길 기다려야 하는 것. 이 동네 룰이라고 하니 따르긴 하는데 흠, 확실히 어색했다. 점원들이 바쁘면 또 몰라, 그냥 서 있거나 자기들끼리 수다 떨고 있는데도 무조건 기다리라고? 메뉴판을 충분히 훑어보고 여유롭게 메뉴를 고를 수 있게 하는 배려라고 솔뫼가 부연해 주었고 메뉴 고르는 데만 한세월인 느림보로서는 재촉하는 편보다 나았지만 나는 배가 고팠고 지나치게 한국인이었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도 전에 뭘로 드려? 라고 묻는 점원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치찌개 둘이요, 하며 주문하는 손님, 팔팔 끓는 김치찌개 김이 가시기도 전에 뚝배기째 삭 비우고 이쑤시개로 이 쑤시며 여기 계산이요, 카드를 내미는 동시에 카드 긁고 사인까지 알아서 대신 해주는 손님과 사장님의 화려한 콤비 플레이 같은 것들에……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의 속도와 나는 너무 맞지 않다고도. 그런데 모두가 느긋한 그곳에서 나는 홀로 성질 급해 외로운 한국인이었다. 

다행히 허기로 폭발하기 전에 점원 선생님이 와 주셨고 우리는 몰레와 타코를 주문했다. 몰레는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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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습작기를 보내고 2023년 첫 장편소설 『해녀들: seasters』를 냈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오래 응시하고 그에 관해 느리게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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