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가난 –어느 부잣집 대학생의 가난 체험기-

장가
장가 · 편향에서 다양함으로 바뀌는 중입니다.
2023/05/26
(박완서 작가님의 도둑맞은 가난을 시점을 달리하여 쓴 글입니다.)
나는 오늘같이 찌개 냄비를 열었을 때 두부점 위에 커다란 멸치가 눈뜨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허연 멸치 눈깔 징그럽다. 대가리는 좀 따고 넣으면 어떻겠냐?” 그 애는 나 보란 듯이 멸치 대가리를 따서 입속에 넣고 자근자근 씹으며 대가리에 영양분이 더 많은 것도 모르느냐고 대거리를 했다. 그러면서 입을 삐죽하며 눈을 보얗게 흘겼다. 나도 그 애가 하는 대로 덩달아 두부점과 우거지를 헤치고 멸치를 찾아 먹기 시작했다.
그 애는 나에게 “어때, 여자하고 같이 사니까 좋지?”라고 물었다. 나는 “응, 그렇지만 방이 너무 좁아서 너 불편하지 않아?”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애는 이 동네선 이만한 방에 대여섯 식구씩은 다 산다며, 나하고 같이 살게 된 후 절약되는 돈 액수를 또 한 번 조목조목 따져 들어갔다. 먼저, 절약되는 액수 중 제일 큰 몫을 차지하는 방세 사천 원, 그러고 나서 연탄값, 반찬값, 양념값, 수돗값, 전깃값, 오물세 등 벌써 몇 번째 말하는 건 지... 나는 같이 살자는 제안을 그 애가 나에게 먼저 하였고, 심지어 두 방을 쓰다가 한 방을 쓰면 연탄을 네 장에서 두 장으로 절약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둘이 한 이불속에서 꼭 껴안고 잠으로써 다시 하루 반장 내지 한 장의 연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소리까지 하는 그 애가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그 애는 자기의 행동이 여자로서 어쩜 부끄럽지도 않은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멕기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은반지를 감쪽같이 금반지로 만들기도 하고 백통수저를 은수저로 만들기도 하는 곳이다. 그 애는 그 애 어머니와 아버지와 오빠가 저만 남겨놓고 죽어버렸다고 하였다. 그 애 어머니는 그 애 아버지 회사가 망해서 머리가 허연 나이에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실직했을 때, 친구였던 인형 옷 만드는 아줌마가 식료품 가게나 내보라고 했는 데 그렇게 하지를 않았단다. 대신에 그 애 어머니는 수억대를 가지고 있다는 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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