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0/18
길 잃은 페미니즘 : "'우리'의 영역을 불허한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입학을 두고 거센 찬반 입장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뼈아픈 상실감을 느꼈다. 가부장제의 권력 카르텔을 해체하겠다고 목소리 높이던 자매들이 페미니즘을 앞세워 또 다른 약자를 배격하는 모습이 기이했기 때문이다. 숙명여대에 입학 허가를 받은 A씨는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마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재학생들은 A씨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대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될 수 없다는, 그 확고한 믿음이 A씨를 추방시킨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페미니즘이 화합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산산조각 냈다. 생물학적 여성만을 '우리'의 영역에 포함시키겠다는 선언은 정상/비정상, 이성/감정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부장제의 프레임을 조금도 탈피하지 못했으며, 기존의 권력체제를 그대로 수용했다. 자매들의 일그러진 신념 앞에서 권력에 도전하고 경계 밖에서 성찰하는 페미니즘의 본위는 지워졌다.

결국 심적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입학을 포기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사건의 여파는 나를 집요하게 붙들었다. 퀴어를 배제한 페미니즘 운동은 '양성애자 시스젠더 여성'이라고 정체화한 내게도 큰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차이를 힘으로 삼는 페미니즘이 집단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무기로 탈바꿈한 이유는 무엇일까? 트랜스젠더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나는 이 물음에 '수치심'이라는 양가적 감정으로 대답해보려고 한다.


낙인찍기 : 익명의 대자보와 황색 언론, 네티즌


'수치심'이란 일반적으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났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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