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4
긴 여행을 다녀온 지 십 년이 넘게 흘렀다. 어떤 기억은 어제 일어난 일처럼 명확한 데 반해, 어떤 기억은 아무리 머릿속을 파헤쳐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네팔 포카라와 관련된 일부 기억이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갔는지, 룸비니를 들렸다 포카라로 갔는지,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봐도 명확하지가 않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부랴부랴 룸비니의 기억을 글로 쓰고, 한동안 포카라에 대해 떠올려 봤지만 여전히 기억을 되찾지는 못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포카라로 향하던 길 중간에 아찔한 절벽이 굽이굽이 펼쳐지는 험한 산들을 넘었다는 것. 버스는 그런 길을 수 시간동안 달리고 달려 드디어 나를 포카라에 내려주었다.
포카라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청량함처럼 그 도시의 첫 인상은 그저 아름다웠다. 병풍처럼 늘어선 만년설 덮인 안나푸르나, 도시 중심에 자리잡은 고요하고 평온한 페와호수, 집집마다 나무를 휘어 만든 그네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트레킹하는 사람들을 위한 적당한 상권까지. 복잡하고 북적대는 카트만두와는 확연히 다른 여유와 낭만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한 달 동안의 중국 여행과 카트만두를 거친 내게는 쉼이 절실했다. 아무리 여행이라지만, 매일매일 새롭게 달릴 수는 없는 법. 짐을 싸고 풀고 또 싸는 일이 좀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포카라의 여유가 퍽 마음에 들었던 나는 그 곳에 오래 머물기로 작정했다. 별 것 안 하고 어슬렁대기. 책 읽기. 멍 때리기. 이 세 가지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느즈막이 일어나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대며 구경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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