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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받습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입니다

기저귀
기저귀 인증된 계정 · 범죄피해를 전달하는 사람
2023/10/25
 


 
alookso 유두호


어느 날, 범죄 피해자가 되었다.


저는 ‘부산 돌려차기 강간살인 미수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지만, 정작 저는 피해를 당한 시점부터 며칠 간의 기억이 없습니다. 사건 이후 며칠을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깨어난 뒤, 가족들로부터 “모르는 사람에게 맞았다, 머리가 찢어져 봉합 수술을 했다.“ 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 번을 듣고, 다시 몇 번을 되물었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날?’이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없고 모르는 사람에게 당한 일이니 앞으로는 괜찮겠지‘ 싶기도 했습니다.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도 씩씩했습니다. 아니 씩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지만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 좋아하는데, 저도 드라마 주인공이 겪은 거랑 비슷한 걸 겪게 된 건가요? 너무 신기해요~!”
(나중에 들어보니, 담당 선생님은 저를 보고 ‘음, 생각보다 증상이 심할 수 있겠군.’이라며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사실 잃어버린 기억보다 무서웠던 건 움직이지 않는 다리였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제 머리가 바닥에 여러 차례 짓밟히는 과정에서 반대쪽 머리가 짓눌려 신경들이 손상돼 생긴 일이라고 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보며 저만큼, 아니 저보다 가족들이 더 힘들어했습니다. 조금 더 지켜보자던 의사도 영구 장애 가능성을 얘기했습니다. 부모님의 무너져 내리는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며칠 뒤,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필명처럼 기적이었을까요!) 신이 나 발가락이 움직이는 영상만 휴대폰으로 몇 개를 찍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조금씩이지만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됐고, 그때부터 다시 두 발로 걷기 위해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계속된 재활이 전혀 쉽지 않았지만, 그 결과 아직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시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미뤄뒀던 공포가 다시 밀려왔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머리를 짓뭉개질 정도로 때리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정작 나는 그 사람의 얼굴조차 모르는데, 날 찾아오면 어떻게 하지? ’ 범인 검거 소식도, 그 사람이 ‘기분 나쁘게 째려봐서 때렸다’라는 주장도 경찰이 아닌,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였던 거 같습니다. 이왕 살게 된 마당에 끝까지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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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 당사자입니다. 마비됐던 발이 풀린 걸 보고 의사가 "이건 기적이다"라고 해서 필명을 '기저귀'로 지었고 범죄피해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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