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허명현
허명현 인증된 계정 · 공연장에 있는 사람
2023/03/30
유튜브에서 가브릴로프(1955~)의 최근 리스트 소나타 연주를 들어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야말로 공포물이다. 음악 안에서 어떠한 메시지도 읽을 수 없다. 영혼 어딘가에 대단한 음악을 가지고 있지만, 단지 그 파편만 보인다. 심장이 약한 분들은 시청하지 않기를 권한다.

 재작년 대구에서 가브릴로프의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를 직관했던 지인들이 충격적이고, 봐서는 안될 걸 봤다고 알려줬는데, 영상을 보니 전혀 과장이 아니다. 한마디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의 완전한 추락이었다. 콩쿠르에 같이 입상했던 정명훈과 안드라스 쉬프가 건재하기 때문에 그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별로 조회수도 안올라가는 클래식 영상에 댓글이 중지된 상태라니, 최근 대중의 분위기가 짐작된다.
안드레이 가브릴로프(1955~)

AG Music Liszt Sonata B minor fugato: "Dialog with Satan", fragment, Kypria Festival, live. - YouTube
   
어떤 연주자든 분명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좋게 말해서 남다른 철학관, 나쁘게 말하면 이탈된 철학관이다. 그게 예술로 발현되면 기백을 가진 아티스트가 되고, 그 불꽃이 꺼지면 그냥 히스테릭한 사람이 된다. 가브릴로프는 분명 후자다. 생각한 것보다 더 히스테릭한 소나타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연주를 하는게 아니라, 가브릴로프는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음악을 하고 있다. 이건 관객들을 기만하는 행위에 가까워 보였다. 스스로의 재미를 위해 연주한다면 모르겠지만, 관객들에게 돈을 받고 연주하는 프로 피아니스트가 보여줄 음악은 아니다. 자유로운 연주라는 말로 수식할 수 없을 정도다.
   
굳이 이 연주를 뜯어보자면 연주의 지향점은 볼륨과 스피드로 보인다. 거기에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단한 음악성을 대충 버무렸다. 하지만 이렇게 볼륨과 스피드로는 관객들을 압도할 수 없다. 관객들은 이게 가짜임을 금방 알아...
허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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