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9
글쓴이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싶습니다.
1. 삶에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어떻게 출산을 지지합니까? 즉, 삶에 의미가 있다고 가정해도, 그 의미가 고통을 상쇄하는지 불분명합니다.
2. 의미가 있다고 가정해도, 비대칭성논증에 의해 의미부재가 의미보다 열위가 아니지 않나요?
3. 우리는 심각한 해악을 만들지 않을 도덕적 의무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죽은은 심각한 해악이라고 여겨지며, 그외에도 만성고통등 심각한 해악을 모두 피하는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출산행위는 죽음을 포함한, 적어도 한가지의 심각한 해악을 만드는 행위같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의미있다고 해악을 만드는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4. 내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고, 아이 또한 그렇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이가 삶의 의미...
김익규, 회사에서 문구용품을 개발하는 연구원입니다. 전통공예와 공예 소재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공예를 생각합니다.
예리한 지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을 위해서는 저 스스로도 고찰이 필요할 것 같네요. 지적해 주신 부분을 포함해서 다음에 더 보완된 글을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삶의 의미'나 '윤리'라는 개념이 그 자체로 모호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일단 지금 단계에서 저는 '출산은 윤리의 평가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삶의 의미를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하나 탄생한 것이니까 좋은 일이다'라고 말하긴 했을텐데, 그건 결과에 대한 단순한 저의 감상이고 윤리적인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절대적인 윤리회의주의자는 아닙니다. 학대와 살인 등은 확실히 부도덕한 일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든지) 출산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게 제 직관인 것 같습니다.
2. 비대칭성논증은 확실한 강점도 있지만,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대칭 논증이 참이라면 곧바로 출산이 부도덕해지는가? 이 부분은 베나타의 최근 논문까지 좀 봐야할 것 같은데 스스로 새로운 논거(가령 '삶의 질' 논증)를 제시했다고 해서 학계의 논쟁은 핀트가 좀 옮겨진 것 같습니다.
3. '해악을 일으키지 말라'는 직관은 매우 강력하지만, 그 전제는 이미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산의 도덕성을 평가할 때에는 새로운 존재가 전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직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실존주의와 윤리 사이에 어떻게 연결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몇 가지 글을 읽어보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윤리는 윤리의 영역이 있고 삶의 의미는 별도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매우 사악한 사람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매우 도덕적인 사람도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실존적으로 주체적으로 살라고 권하는 건, 그게 윤리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어차피 무의미한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4. 아이를 수단으로 대우하거나 도박을 하는 행위는 확실히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부모-자식 관계는 서로 각자의 삶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자녀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불행해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건 결국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뒷받침이나 삶의 질이 높을 수록 삶의 의미를 느낄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이런 고민이 필요할텐데 현재로서는 객관적인 삶의 조건과 실존적인 삶은 아예 별개의 문제로 봐야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삶의 질을 증진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건 실존주의와는 별개의 관점에서 논의될 범주라고 생각합니다.
5. 아동의 복지 향상을 위해 양육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생물학적 부모가 반드시 양육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지점에서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요. 출산자(생물학적 부를 포함해서)의 의무는 낮추고 양육자의 의무를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아무리 공공 보육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상 출생직후 출산자의 노력 없이는 아이의 삶이 매우 위태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소설 '멋진신세계' 같은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 너무 먼 얘기겠죠. 출산만 하고 양육은 거부하겠다는 부모가 있을 때, 공공 병원에서 출산함과 동시에 관계를 단절하는 방식이 도입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아직 저도 불확실해서 고민을 더 해보겠습니다.
예리한 지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을 위해서는 저 스스로도 고찰이 필요할 것 같네요. 지적해 주신 부분을 포함해서 다음에 더 보완된 글을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삶의 의미'나 '윤리'라는 개념이 그 자체로 모호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일단 지금 단계에서 저는 '출산은 윤리의 평가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삶의 의미를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하나 탄생한 것이니까 좋은 일이다'라고 말하긴 했을텐데, 그건 결과에 대한 단순한 저의 감상이고 윤리적인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절대적인 윤리회의주의자는 아닙니다. 학대와 살인 등은 확실히 부도덕한 일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든지) 출산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게 제 직관인 것 같습니다.
2. 비대칭성논증은 확실한 강점도 있지만,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대칭 논증이 참이라면 곧바로 출산이 부도덕해지는가? 이 부분은 베나타의 최근 논문까지 좀 봐야할 것 같은데 스스로 새로운 논거(가령 '삶의 질' 논증)를 제시했다고 해서 학계의 논쟁은 핀트가 좀 옮겨진 것 같습니다.
3. '해악을 일으키지 말라'는 직관은 매우 강력하지만, 그 전제는 이미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산의 도덕성을 평가할 때에는 새로운 존재가 전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직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실존주의와 윤리 사이에 어떻게 연결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몇 가지 글을 읽어보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윤리는 윤리의 영역이 있고 삶의 의미는 별도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매우 사악한 사람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매우 도덕적인 사람도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실존적으로 주체적으로 살라고 권하는 건, 그게 윤리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어차피 무의미한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4. 아이를 수단으로 대우하거나 도박을 하는 행위는 확실히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부모-자식 관계는 서로 각자의 삶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자녀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불행해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건 결국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뒷받침이나 삶의 질이 높을 수록 삶의 의미를 느낄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이런 고민이 필요할텐데 현재로서는 객관적인 삶의 조건과 실존적인 삶은 아예 별개의 문제로 봐야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삶의 질을 증진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건 실존주의와는 별개의 관점에서 논의될 범주라고 생각합니다.
5. 아동의 복지 향상을 위해 양육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생물학적 부모가 반드시 양육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지점에서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요. 출산자(생물학적 부를 포함해서)의 의무는 낮추고 양육자의 의무를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아무리 공공 보육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상 출생직후 출산자의 노력 없이는 아이의 삶이 매우 위태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소설 '멋진신세계' 같은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 너무 먼 얘기겠죠. 출산만 하고 양육은 거부하겠다는 부모가 있을 때, 공공 병원에서 출산함과 동시에 관계를 단절하는 방식이 도입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아직 저도 불확실해서 고민을 더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