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AI 인기, 신앙생활 바꿀 수 있을까?
2023/12/01
교회에 가는 대신 스마트폰 앱으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면? 깊은 고민에 대한 조언을 성직자 대신 인공지능(AI)이 줄 수 있다면? 당신은 그런 서비스를 활용할 것인가?
신앙생활의 재택화를 돕겠다는 ‘종교 AI’ 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챗GPT를 기반으로 하는 ‘초원’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올해 3월 출시된 이 서비스는 사용자가 질문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성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변을 제시한다. 생명의 말씀, 성경 해설, 기도문 구성으로 여느 목사의 설교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종교 AI’가 등장하며 신앙 생활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수환 총신대 기독교교육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컴퓨터과학교육 박사로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교육에 주력해왔다. 한국컴퓨터교육학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by alookso 우현범 에디터
신앙생활의 재택화를 돕겠다는 ‘종교 AI’ 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챗GPT를 기반으로 하는 ‘초원’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올해 3월 출시된 이 서비스는 사용자가 질문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성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변을 제시한다. 생명의 말씀, 성경 해설, 기도문 구성으로 여느 목사의 설교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종교 AI’가 등장하며 신앙 생활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수환 총신대 기독교교육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컴퓨터과학교육 박사로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교육에 주력해왔다. 한국컴퓨터교육학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by alookso 우현범 에디터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 “종교 AI는 지혜와 영성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김수환 총신대 기독교교육과 교수
성경 학습을 통해 단순한 지식을 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혜와 영성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챗GPT 모델 베이스로 만들어진 종교 AI가 주는 답은 절대 주인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 얻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 “문자 이면의 맥락을 살피는 게 지혜” 김수환 총신대 교수
지식은 인류가 학술 활동이나 문화유산 건축을 통해 축적한 것이다. 반면 지혜는 지식보다 높은 단계에 있다. 지혜는 흩어진 지식을 통찰하며 문자 이면의 맥락을 살피기에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러한 경험을 쌓을 수 없기 때문에 삶의 지혜가 담긴 답을 줄 수 없다.
본문에서 예시로 언급되는 '초원'이 주요 종교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 국한 된 것이고, 본문에 의견을 주시는 분도 개신교 계열의 총신대 교수님이시라는 전제에 국한하여 떠오르는 생각은 대한민국 개신교 전반의 환경에서 종교 영역의 AI에 대해 코멘트하시는 기본적인 내용들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올바른' 개신교 목회자 및 신학자들과 AI를 대비한다면 일리있는 의견일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개신교가 드러내고 있는 엄연한 현실은 이미 수많은 목사들 스스로 성경의 본질을 왜곡, 오염시키며 세상의 질타를 받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AI의 할루시네이션은 차라리 애교로 봐줄수도 있을 정도 아닐까요..ㅠㅠ
종교의 영역에서 ai가 인정받는게 빠르면 빠를수록 ai가 인간처럼 권리를 가지는게 빨라지겠죠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고 느껴질테니까요
적어도 AI의 오류는 목회자의 위선과 부패 때문에 겪게 되는 박탈감이나 배신감, 회의감을 주진 않겠죠. 애초에 목회자를 향한 신앙인의 신뢰와 AI에게 뭔가를 묻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같지도 않겠지만, 사람들이 목회자 대신 AI에게 묻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어떤 외부의 자극 자체는 그것이 무엇이건 관계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극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수용성이겠지요. 준비가 없는 사람이라면 (진짜로 있다는 가정 하에) 신이 직접 말을 걸어도 알지 못 할 것이며, 마음가짐이 갖춰진 사람은 길가의 정물 하나에도 신을 느낄 수 있다 믿으니까요.
요는, 인공지능이 신의 지식지혜를 전달 가능한지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소양적 함양에 있다고 봅니다.
종교인들은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는 언동은 가급적 삼가면서 그 부분을 대중에게 일깨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인간이 AI에 끌려가느냐 아니면 AI를 이용하느냐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AI를 통해서 지식을 얻을 수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판단은 인간이 해야 하는것이고 그 지식을 활용해서 지혜를 얻는것도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인것 같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사이비종교가 생기는것도 일부 사람들이 사이비교주가 전하는 교리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못함으로서 사이비종교에 빠지는것 같습니다.
지식이 넘쳐나는 AI시대에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더 많이 공부하고 깨어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지 기능의 문제일까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이 기능과 효율만 충족하면 되는 것인지. AI로 죽은 배우의 모습을 재현해서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동료배우는 울고 있고요. 이걸 소통이라고 볼 수 있을런지. 기계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입된 기능을 수행하는 것 뿐이지만. 이제 단순소동을 뛰어넘어 감정노동분야로도 영억을 넓혀가나봅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지 기능의 문제일까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이 기능과 효율만 충족하면 되는 것인지. AI로 죽은 배우의 모습을 재현해서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동료배우는 울고 있고요. 이걸 소통이라고 볼 수 있을런지. 기계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입된 기능을 수행하는 것 뿐이지만. 이제 단순소동을 뛰어넘어 감정노동분야로도 영억을 넓혀가나봅니다.
적어도 AI의 오류는 목회자의 위선과 부패 때문에 겪게 되는 박탈감이나 배신감, 회의감을 주진 않겠죠. 애초에 목회자를 향한 신앙인의 신뢰와 AI에게 뭔가를 묻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같지도 않겠지만, 사람들이 목회자 대신 AI에게 묻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