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2023: 8.30] 진주 터미널에서 만난 이야기꾼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3/08/30
요즘 사이버 펑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원래는 역사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필요한 역사를 섭렵하자니 그 끝이 너무 멀어보인다. 지금은 작은 성취가 필요할 때다. 사이버 펑크든 뭐든 성취가 날 무언가로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손을 막을 수 없다.

역사 소설을 쓰려는 계기가 있었다. 거창한 건 아닌데, 특별하다면 특별한 이유일 수 있다. 예슬의 부탁을 받고 진주에 내려간 적이 있다. 파업으로 인한 해고 문제 관련 소송건으로 바쁜 나머지 예슬은 고향집인 진주에서 내려갈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내가 진주에 내려갈 일이 있어 가는 김에 예슬의 부탁을 들어줄 참이었다. 나는 예슬이 건네준 서류를 들고 거기에 예슬 어머니의 직인을 받으면 됐다. 원래는 (예슬의) 사무원이 갈 예정이었지만 워낙 바쁜 탓에 내가 일손을 덜어주기로 했다.

잠실 고속터미널에 비하면 한참 작은 규모의 터미널과 터미널 앞뒤로 난 좁은 도로. 그리고 도롯가의 낮은 건물들. 작은 도시 전형의 풍경이었다. 그래도 어엿한 ‘시’인데, 작다는 표현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 정도여서, 정겹다는 느낌보다 대한민국은 갈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겨운 느낌이 전혀 안 든 것은 아니다. 군 복무 시절 군부대 근방 읍내의 풍경이 그와 비슷했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진주에 들렀다기보다는 머무는 기분이 들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름 없는 무거운 짐. 그것은 대도시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무게 아니겠는가.

예슬 어머니는 약속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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