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on
everon · 독립연구자
2024/05/23
앞에서 말한 '어눌한 정보원'과 '젊은 세대'를 한 명의 개인이 다 감당하는데에는 지독한 문제가 하나 얽혀있다. 바로 개인윤리와의 충돌이다.

'늙은이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감당하는 나는 얼마나 유연한가?'와 다른 질문이 아니다. 개인윤리와의 충돌은 바로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밈을 사용해서 좀더 이 질문을 피부에 닿게 바꾸면, '늙꼰과 젊꼰을 감당할 내공이 나에게 있는가?'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내 정보원을 늙꼰과 젊꼰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그 묘사가 상당히 부족하고 편협하다. 그래서 이 밈 문장은 적절하지 않다. 여기서는 '윤리적 유연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두 양 극단의 정보원들은 각자의 편견과 어떤 동류적 배경을 이유로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그에 수반되는 윤리를 형성하고 있다.

윤리는 무엇을 위해 필요할까. 어떤 공동체의 윤리를 풍부하게 설시한 글들은 보통 '종교적 규범'의 역할을 한다.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는 보통 그 공동체의 존속에 필요한 관습을 기준으로 나뉜다. 무엇을 먹어야 하며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며 어떤 이들과 결혼하고 어떤 이들과 사랑을 나눠야 하는 지 어떤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고 어떤 가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지. 이것들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원리원칙들의 집합체가 윤리다.

현대사회는 이 윤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빠른 속도로 변한다. 중혼제도라는 예시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젊은이들의 윤리도 이해하면서 늙은이들의 윤리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지이다. 구체적인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첩이 자식을 낳았는데, 본처가 남아를 생산하지 못해 내 자식으로 족보에 넣었더니 본처가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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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교통네트워크공학, 시계열분석, 노동패널, 한국세제사 등을 연구. Science부터 art까지 온갖 것에 다 관심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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