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댄서
서툰댄서 · 네트워크를 꿈꾸는 자발적 실업자
2024/04/19
상당히 오래 전(1990년대 중반) 일이지만, 약사가 한약을 조제할 수 있게 허용하는 법안을 두고 약사와 한의사 간에 격렬한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당시 한약 판매가 한의사들의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의사들 입장에서는 절대로 반대해야 하는 일이었던 반면, 약사들은 당연히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 분쟁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고, 시위 뿐 아니라 동맹 휴학, 면허 반납 등 양측의 강도 높은 집단 행동이 이어졌다.
당시 신문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의대와 약대 학생들이 각각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찍은 2장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 놓은 사진이었다. 90년대 초반까지 흔했던 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와 비슷하게, 앳된 얼굴의 젊은 학생들이 머리띠를 매고 북과 장구를 치면서 단호한 표정으로 주먹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었다.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다른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 나한테 인상적이었던 것은, 양쪽 모두 자신의 입장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편의 학생들은 독재정권에 반대할 때와 비슷한 분노와 정의감을 느끼면서 자신들의 명분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진은 어디에 속해 있는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에 따라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한 인식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서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았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사회의 하부구조는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봉건주의, 자본주의 등 사회의 지배적인 생산 방식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 제도, 이념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법질서와 제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선호하고 선망하는지, 무엇을 옳다고 생각하는지마저도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적합한 방식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사람은 그 계급에 유리한 이념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한 사람은 사회의 지배적인 이념(헤게모니)에 구속받다가 의식화를 통해 자기 계급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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