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고요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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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고요한 기억

동백의 역사 [제주 4·3: 고요한 기억]

해방 직후 제주도는 혼란스러웠습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면서 약 6만 명의 일본군이 제주도를 빠져나갔습니다. 일제의 수탈을 피해 육지로 이주했거나, 일본에 끌려갔던 제주도민 약 6만 명이 귀환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22만 명이던 제주도민은 1년 만에 28만 명을 넘겼습니다. 1946년 제주도는 대흉년과 콜레라를 동시에 겪었습니다. 제주도 민심은 흉흉했습니다.

일본군이 빠져나간 자리는 일제에 협력해 제주도민을 압박하고 수탈했던 경찰과 관리가 채웠습니다. 미군정이 이들을 기용했습니다. 제주도민 사이에서 미군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졌습니다. 1947년 3월 12일, 미소 냉전체제를 공식화한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미군정 경무부는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했습니다. 곧이어 벌어질 제주도민을 향한 탄압은 이들이 ‘좌익 세력’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겁니다. 극우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과 경찰도 비슷한 인식으로 제주도민을 탄압하며 제주 사회는 혼돈으로 치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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