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연초 씨 구술생애사 (3) "의붓시압씨 자식들을 밥 해먹였다. 더럽고도 징한 세상."

블라시아
블라시아 · cpbc 라디오 작가인 기혼 여성
2024/03/25
내가 둘째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당신 아들 내외 집이자 내 친정집에 살고 계셨다. 주말에 남편이 출근하면 난 첫째를 데리고 친정에 가서 하루 종일 뭉개다 오곤 했다. 결혼하기 전에 쓰던 방이 그대로 있어서 내가 거기 들어가 일을 하는 동안 내 엄마와 할머니가 첫째랑 놀아주었다. 첫째는 내 엄마를 ‘오할미’라 불렀고 내 할머니를 ‘또할미’라 불렀다. 아이가 ‘외’ 발음이 어려워 ‘오’로 발음한 것이 오할미가 됐는데 지금 같으면 ‘외할머니’라는 불평등한 호칭을 알려주진 않았을 것이다. 또할미는 할머니가 또 있다고 생겨난 호칭이다. 정확히는, 첫째가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라 제 입으로 오할미, 또할미 부르는 일은 드물었고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서로를 지칭할 때 그런 호칭을 썼다고 해야 옳다. “서현아, 또할미한테 가서 놀아.” 이렇게. 그러다 둘째를 임신하고 둘째 생후 한 달쯤 됐을 때 내 부모님은 지방으로, 할머니는 막내아들네 근처로 이사했고 우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할머니가 업어 키운 아이가 첫째까지라 그런지 할머닌 첫째를 향한 애정이 각별하고 상대적으로 둘째와 셋째에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통화할 때 할머니가 첫째는 서현이라고 하면서 둘째와 셋째를 말할 땐 ‘애기들’이라 통칭하시는 걸 들으면 애정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당시 친정집에서 할머니가 당신의 증손주를 업고 재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내 마음이 몽글몽글한 순두부 같아지곤 했다. 어려서 할머니 손에 자라 할머니에게 특별히 애틋한 감정이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닌데 할머니가 내 아이를 안은 모습은 왜 그리 뭉클했을까. 피붙이라는 관계를 실감해서일까. 내가 어떤 긴 역사의 한 지점에 서 있구나 하는 자각이었나. 첫째가 할머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건, 타인인 할머니와 나 사이에서 작지만 분명한 접점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게 할머니는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자 내 아버지의 어머니라는 사실 외에 특별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아니었으나, 내가 아이를 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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