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우리들의 세상이 이렇다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09/22
1995.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북카페에서 자주 눈에 띄던 소설이라 언젠가 반드시 읽겠다고 마음먹은 책이다. 좀비물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제목이다. 그런데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노벨상 수상 작가. 노벨상 위원들이 좀비물 작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 같지는 않다.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마침내 첫 장을 펼쳤다. 세련된 문장들로 가득했다. 글보다는 빼곡한 이미지가 먼저 다가왔다. 그 함의하는 바는 이랬다.

이 책은 함부로 읽을 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천만 관객 돌파 영화보다 평론가 평점 만점 영화가 더 끌리기 시작하면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안경을 쓴 기분이다. 좁지만 더 진중해진 세상. 그만큼 외로워지지만 그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세계가 따로 마련돼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내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었다.

좀비물은 아니지만 의외로 좀비물을 닮았다. 눈먼 자들이 배회하는 모습은 좀비를 염두에 두고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눈이 멀었어!" 강렬한 한 마디로 소설은 시작한다. 장르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첫 번째로 눈이 먼 사내는 이후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로 명명된다. 이후로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이름이 없다. 왜 그럴까? 볼 수 없는 자에겐 주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이 필요 없다는 뜻 아닐까?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는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실명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학계에 전혀 보고된 바 없는 새로운 유형의 실인증. 실인증은 감각 기관의 손상이 아닌 뇌의 이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병증을 말한다. 하지만 알려진 실인증과도 증상이 다르다. 의사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환자를 안심시키고 집에 보낸다. 퇴근 후 의사는 낮의 환자를 떠올리며 전공 서적을 펼쳐 든다. 그러다 잠이 든 그는 다음 날 아침 눈이 멀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놀랍게도 실인증은 전염병이었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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