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부칠 수 없는 편지: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차구마
차구마 · 창작집단 차구마컴퍼니입니다.
2024/02/12
출처: pixabay
당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하는 얘기들을 대부분 좋아했으니까요. 어쩌다 당신을 알게 된 후부터 죽 그래왔어요. 사람들이 앞다투어 ‘무해하다’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무해한 사람. 사람들은 당신을 그렇게 불렀고, 나도 곧 동의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의하지 않을 방법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당신은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만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었고, 나 역시 당신의 장단에 맞추어 자주 웃었으니까요. 그 웃음이야말로 당신에 대한 나의 전적인 이해라고 여겼을 겁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작은 화면을 사이에 두고 멀리 있는 당신과 친해진 줄로만, 그래서 당신을 잘 알게 되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이따금씩 고백하곤 했지요. 당신은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자신의 슬픔을 생각한다는 걸요. 당신은 당신의 슬픔과 우울을 깊게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잠시 헤엄도 치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기를 툭툭 털고 나와 웃음을 건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 여기 하나씩 받아. 이건 내가 방금 건져낸 슬픔 한 덩어리야. 난 이런 것에도 슬퍼해. 어때, 웃기지?’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주는 웃음엔 당신의 슬픔 말고는 다른 누군가의 상처가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우리는 코미디언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의 본질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코미디언, 당신은 코미디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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