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기억(들)의 연대기
1. 1986년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살던 ‘국민학교’ 신입생 문지혁은 종이를 사각형으로 작게 잘라 끄트머리를 ‘호치케스’로 찍은 노트를 만들어 팔았다. 표지에는 꽃과 하늘, 바다와 배 혹은 등대가 그려져 있었고 가격은 150원이었다. 주 고객은 가족과 친척들이었는데, 200원을 내면 거스름돈은 돌려주지 않았다.
2. 같은 해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서는 같은 학년 조효은이 면 스타킹에 난 구멍을 꿰매고 있었다. 새로 산 스타킹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몹시 속이 상했고(넘어졌지만 아픈 것을 몰랐을 정도로), 어쩌면 부모님에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반짇고리에서 꺼내온 이불 꿰매는 굵은 실로 바느질을 해서 그 구멍을 메웠다.
3. 1998년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녹두거리에서 영문과 신입생 문지혁은 양손 가득 인쇄물 꾸러미를 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무겁긴 하지만 그렇다고 땅에 내려놓을 수도 없어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꾸러미 안에는 막 인쇄소에서 찾아온 잡지 백여 부가 들어 있었다. 격주로 발행하는 영문과의 과 잡지 <생동>이었다.
4. 1999년 백순덕 선생은 프랑스에서 7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홍대 앞 삼거리,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10-3에 작업실 겸 공방 <렉또베르쏘>를 열었다. 당시로써는 생소하던 예술제본(La Reliure d’art)을 하는 곳이었다. 정규수업을 개설했지만 공방이 협소해서 때론 다른 출판사의 강의실을 빌리기도 했다.
5. “2000년 아니면 2001년이었던 것 같아요.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게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이었거든요. 순간적으로 그 장면이 싹 지나갔어요. 선생님께서 책을 만들고 계신 장면. 근데 그 장면이 저에게 너무 강렬했던 거예요. 지금도 옛날 다이어리를 찾아보면 있는데, 제가 그때 딱 두 단어를 급하게 적어놨어요. 예술제본. 백순덕.”
6. 2001년 겨울, 경영학부에서 정보 관리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조효은은 백순덕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