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 / 김형로 (주말 추천시)

방아
방아 · 시나 소설, 읽고 쓰기를 좋아합니다.
2024/08/10
[ 2024.08.10 주말 추천시 ]

굴비  /  김형로


굴비가 똑같은 굴비로 보인다면
당신은 아직 멀었어

굴비마다 다르게 보일 때쯤
당신, 세상 조금 살았다 소릴 듣게 될 거야

거울 속 저를 보듯 찬찬히 들여다보라구
보고 또 보라구
굴비에 새겨진 최후의 표정을

어떤 것은 놀라고 어떤 것은
어리둥절하고 어떤 것은
고통스러운 것 같고 어떤 것은 호기심에 입을 옹송거리고
어떤 것은 억울한 원혼 같고

세상의 끝에는
꽉 다문 입으로 몸을 뒤틀며
더러는 할 말 남은, 못 닫은 입으로 가야 할 시간도 있을 것이다

엮걸이에 달리며 저 굴비의 아가미엔 짠 소금이 구름처럼 왔을 것이고
짠 바다에서 더 짠 소금 속에 들어가는 몰입을 배웠을 것이고
속을 버리고 자세만 남은 몸으로 하나의 몸짓, 하나의 표정이 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길에서 마르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입멸이란 것이고

그때 당신은 비틀린 말과 행동을 굽어보겠지
굴비를 보며
최후의 자세를, 못다 한 말을 생각하겠지

그때쯤 당신은 인생 제법 산 사람
굴비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
결코 비굴하고 싶지 않아 이름을 거꾸로 뒤집어쓴
죽어서도 죽은 것만은 아닌 싸늘한 멸
다하지 않은 사라짐을 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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