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의 황태성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1/24
계묘년의 황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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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해가 바뀌고 새로운 갑자가 돌아오면 이 갑자의 해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돌아볼 때가 있다. 올해는 2023년 계묘년이니 60년 전의 계묘년은 1963년이었다. 올해 환갑을 맞는 63년생 토끼띠들이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고 있던 그 해에도 세계사의 고동은 여지없이 숨가쁘게 울리고 있었다. 그 해의 최대 빅뉴스라면 뭐니뭐니해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암살일 것이다. 지금도 미국 역사의 미스테리로서 잊을만하면 “JFK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영화 <더 락> 중) 질문이 던져지거니와, 인기 많았던 젊은 대통령은 여러 의문 속에 총탄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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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있었던 여러 사건과 명멸해간 인물들을 훑어 보자니 한 사람의 이름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황태성(1906~1963)이라는 사람이다. 경북 상주 출신의 그는 일제 때부터 삐딱한 반골이었다. 다니던 학교마다 시국 문제를 일으켜 퇴학 딱지를 받은 일제 강점기 ‘운동권’ 학생이었고 이후로도 요시찰 인물을 면한 적이 없었다. (일제 말 전향하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청년운동을 하던 박상희와는 절친이었고, 그 새까만 막내동생 박정희를 무척 귀여워했다.

황태성 (19067~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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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가 해방 공간의 좌우 충돌 와중에 피살당한 후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 신원보증인이 돼 준 것도 황태성이었다. 황태성으로서는 자신의 절친의 동생이자 친형보다도 더 교감이 깊었던 박정희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깊었으리라. 하지만 여순 사건과 뒤이어 벌어진 6.25라는 대폭풍 앞에서 둘의 행로는 한때 접점을 이뤘으나 영원히 만나지 못할 두 직선으로 갈린다. 그러나 황태성은 그 직선의 방향을 틀고자 했다. 북한 정권에서 무역성 부상까지 역임한 그가 남파를 자청한 것이다. 북한의 밀사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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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공작조와 함께 임진강을 헤엄쳐 건너 남쪽에 닿은 것은 박정희 소장이 ‘은인자중하던 군부’의 극히 일부를 이끌고 한강 다리를 건너와 정권을 잡은 196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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