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비온 후의 거미줄 같은 영화들

김중혁
김중혁 인증된 계정 · 소설가, 계절에 대해 씁니다.
2024/04/05
photo by 김중혁
어릴 때는 방에서 거미를 발견하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미가 내 입으로, 내 코로, 내 귀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거미가 대체 왜 그러겠어, 자기 집을 놓아두고.’ 스스로 달랬지만 상상은 멈춰지질 않았다. 내 속으로 들어간 거미는 위장에다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입에 거미줄을 치지 못하다는 얘기일 테니 쿨쿨 잠자고 있는 내 입에는 거미줄을 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 거미는 점점 커진다. 점점 커진 거미가 나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이런 상상은, 그동안 받은 교육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거미의 생김새 때문일 것이다. 거미가 해롭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아침 거미가 어떻고 저녁 거미가 어떻고, 모든 거미에겐 독이 있고…. 어른이 되어서야 그런 게 다 허무맹랑한 소리란 걸 알게 됐다.

생각이 바뀌고나자 거미줄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비 온 후 갠 하늘에 언뜻 비치는 빗방울을 포획한 거미줄은 어찌나 황홀한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 거대한 대지의 이불도 짜낼 것처럼 촘촘하게 빚어진 간격은 또 얼마나 신비로운지, 하루종일 거미줄만 보며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샬롯의 거미줄>에는 거미 샬롯이 거미줄을 만드는 영상이 나오는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몇 번이나 돌려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Google 문서, Pages, Obsidian, Ulysses, Scrivener 등의 어플을 사용하고 로지텍, 리얼포스, Nuphy 키보드로 글을 쓴다. 글을 쓸 때는 음악을 듣는데 최근 가장 자주 들었던 음악은 실리카겔, 프롬, 라나 델 레이, 빌 에반스 등이다.
9
팔로워 13
팔로잉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