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은
조영은 · 책이나 영화, 저 자신에 대해 씁니다
2023/12/07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를 보고 왔다. 아무것도 상실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공감과 연대가 경험의 유사성을 기본 토대로 삼는다면, 결국 우리를 하나로 연결해 주는 가장 견고한 끈은 상실의 보편성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 사랑을 배우지만, 때론 사랑을 배우기 위해 상실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영화 속 세미가 그랬듯이.

거울

영화는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있던 세미가 몸을 일으켜 앉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몸을 일으켜 앉은 세미가 교실 뒤편에 걸려 있는 거울 안에 들어오는 장면이다. 그 오프닝 장면을 기점으로 관객은 단시간에 세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는다. 세미는 악몽을 꿀 정도로 소중히 생각하는 친구가 있고, 죽은 새를 묻어줄 정도로 감성적이다. 멋대로 학교를 조퇴하고 집으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게 엄마와 투닥댈 정도로 명랑하고,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눈물을 흘려버릴 정도로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미가 솔직하고 선명한 인물인 만큼 스크린도 세미의 감정들로 가득하다. 하은에게 닿고자 하는 세미의 마음이 넘실대다 못해 넘쳐흘러서 스크린 밖 관객에게까지 여실히 전달된다. 하은이와 함께 제주도 수학여행에 갈 수 있을지, 하은이가 자신과 같은 마음일지, 하은이에게 따로 좋아하는 상대가 있는 건 아닐지, 그 넘쳐흐르는 마음의 중심엔 늘 하은이 있다. 늘 하은이 있지만, 사실 세미의 마음일 뿐이다. 결국 세미의 마음을 이루는 건 어쩌면 상대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어쩌면 상대가 자신과 다른 마음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확인해 그 혼란을 잠재우고 싶은 욕심이다.

따라서 극 중 거듭되는 거울샷은 세미가 얼마나, 마치 세미만을 담고 있는 거울 속 모습처럼,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는 인물인지 보여주는 장치이다. 극 중 세미는 하은의 친구 다애를 통해 하은이 스토킹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하은에게 닥쳤을지 모르는 위험보다 다애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에 집중한다. 세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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