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론드] 특별한 해석보다 특별한 사건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11/02
2022. 앤드류 도미닉. <블론드>.

<블론드>를 보면서 마를린 먼로라는 소재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았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라 일컬을 만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스크린을 꽉 채울 수 없다. 우선, 서사를 관통하는 주제가 필요하다. <블론드>에서는 마를린 먼로의 남자들이 그 주제를 세워준다.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매혹적이긴 하나 불안정한 영혼의 여인이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지를 영화는 잘 표현한다. 하지만 여전히 허전하다. 비슷한 코드의 영화 <로마>를 볼 때와 다른 허전함. 역시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인 <오펜하이머>와 비교하면 그 무게는 더욱 가볍다. 

허전한 기분의 실체를 추적하기로 했다.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겐 다음과 같은 경험이 있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하니 몇몇 지인에게서 이런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자기의 기구한 삶을 이야기로 구성해보라는 것이었다. 반쯤은 장난이었을 테지만 반쯤은 진지해 보였다. 정확한 속내는 그 기구한 삶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그렇게 낚여 한 시간 내내 듣기만 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동갑인데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기구한 사연을 가진 친구는 여전히 기구한 삶을 이어가고 있고, 나는 편한 의자에 앉아 글을 쓰겠다면 온종일 커피나 홀짝거리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기능성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전날과 다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얼굴을 마주보며 들을 때는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 이야기가 막상 모니터 앞에서는 흔하디 흔한 신파극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일까? 한 팔로 턱을 괴고 검은 화면 앞에 앉아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특별한 사건보다 특별한 표현. 
특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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