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체, 어디까지가 음악인거야?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
2023/08/11
‘음악’은 대체 무엇일까. 각종 기호와 음표가 빼곡히 나열된 악보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콘서트홀에서 연주자의 손에 울리고 있는 음악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 담고 있는 파일 조각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음원 파일이 담긴 동그란 CD나 LP판을 말하는 것일까?
해답을 내리기 어려운 이 질문들에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은 제목에서 말하듯 ‘악보, 자동 악기, 음반’이라는 세 가지 사물로 음악의 존재론적 화두를 던진다. ‘쓰는’ 음악, ‘하는’ 음악, ‘듣는’ 음악, ‘가공하는’ 음악, ‘저장하는’ 음악, ‘재생하는 음악’ 모두를 말이다.
1. 악보: 음악의 잠재태
악보의 정교화
연주에 대한 비평을 할 때, 흔히 우리는 ‘악보’를 그 기준점으로 삼고는 한다. ‘악보에 충실한 연주였다’,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연주했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라는 평가들은 모두 악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악보를 작품이라고 여기는 시각은 고전·낭만주의 시기에서야 생겨난다. 바로크 시기만 하더라도, 작곡가는 연주자에게 ‘음악의 뼈대’ 정도만을 제공해주었고, 연주자들은 각종 장식음을 첨가하여 ‘자의적인’ 연주를 했다.
음악의 뼈대만을 제공해주었던 악보는 고전·낭만주의 시기를 거치며 점점 정교해졌다. 각종 지시어들이 새로 추가되기 시작했고, 다이나믹의 폭도 커져갔다. 봉건사회가 무너진 18세기 이후 귀족으로부터 독립한 작곡가들이 자신의 권위를 ‘정교한 악보’로서 찾으려 한 것이다. 그렇게 악보는 음악의 ‘모든 것’처럼 여겨졌다. 더 많은 지시어들을 악보에 적시하고, 때로는 문장 자체를 지시어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악보의 해체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악보라도 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악기 레슨을 받다 보면, ‘이 부분은 저 ...
예술고등학교를 나와 음악교육을 전공했습니다. 현재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환멸을 느끼고 예술과 미학 공부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잡지 <월간 객석>에서 잠깐동안 에세이를 기고했으며, 최근에는 간단한 서평 등을 작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