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8
작년인가요.
부동산이 시끌시끌 아파트값이 시끌시끌 하기 시작한 뒤 뉴스에서 나오더라구요.
“2030이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고 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했습니다.
영끌해서 아파트를 산다는 말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저는 끌어올 영혼을 이미 모두 팔아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거든요. 주변 친구들도 영끌해서 생존하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친구는 없었어요.
대체 누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알아보는데, 영 맘에 드는 집이 없다구요. 저도 마침 혼자 독립할 전세를 알아보던 시기여서 이야기에 참여했어요. 우리 동네도 많이 비싸져서 원룸이 전세 1억3천이다, 갈 곳이 없어 걱정이다, 라고 토로했지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
부동산이 시끌시끌 아파트값이 시끌시끌 하기 시작한 뒤 뉴스에서 나오더라구요.
“2030이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고 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했습니다.
영끌해서 아파트를 산다는 말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저는 끌어올 영혼을 이미 모두 팔아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거든요. 주변 친구들도 영끌해서 생존하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친구는 없었어요.
대체 누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알아보는데, 영 맘에 드는 집이 없다구요. 저도 마침 혼자 독립할 전세를 알아보던 시기여서 이야기에 참여했어요. 우리 동네도 많이 비싸져서 원룸이 전세 1억3천이다, 갈 곳이 없어 걱정이다, 라고 토로했지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
일존의 통계적 착시(?)라는 생각이 들 때가
평균적으로 2030의 소득수준은 높을 수 없는데 통계안에 포함되는 숫자를 인구수대로 나눠본다면 절대 수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끌이라는 신조어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게 확인되긴 합니다.
그리고 상층에서 존재할 만한 담론들만 확대 재생산되는 느낌은 비단 부동산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삶 모든 부분에서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단적으로 호캉스~풀파티~감성__ 같은 꽤나 먼 나라에서나 존재할 법한 문화생활들을 항유할 수 있는 2030이 얼마나 많을까요?
30중반에 해당하는 제 입장에선 정말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영끌해서 생존하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친구는 없다는 말이 가슴을 때리는 아침입니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없는 가을 하늘이 펼쳐지고 ~~따스한 커피 한 잔 하고 시작해요. 파이팅!
상층 계급이 과대 대표되는 현상. 말씀하신 것 처럼, 도움이 될 계층의 이야기들을 눈처럼 굴리는 게, 하층민의 삶을 주목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누군가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네요.
예를 들면, 어떤 팀이 있다고 했을 때, 팀 내 에이스의 불평을 들어주는 편이 팀 내에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불평을 들어주는 편 보다 훨씬 단기적으로 팀의 생산성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랄까요. 사회의 동력을 기능적인 면 또는 물질적인 면에서 조명하면 상층의 생산력은 하층을 훨씬 윗 돌 테니,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편이 어떻게 보면 더 생산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판단이 굳이 특정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능력 주의' 라는 암묵적인 합의 아래에 우리 모두에게서 이루어 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능력 주의' 아래에서 더 가진 사람은 당당한 반면, 덜 가진 사람은 마치 패배자인 것 마냥 위축되기 마련이니.. 공론의 장에서 더 큰 목소리로 들리는 것은 더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뿐만 아니라, 사회 대부분을 이루는 중간 층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기도 하구요. 계층 간 유동성이 줄어들 수록, 자신을 윗 계층에 편입 시키고자 하는 욕구와, 밑 계층과 구별하고자 하는 욕구가 동시에 강해질 테니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덜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껏해야 연대 또는 측은지심의 선에서 다뤄지는 정도인 것 같아요. 이들의 발언은 '구질구질하다' 또는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다'라는 비판으로 수면 밑으로 잠겨 버리기도 하구요.
상층 계급에 대한 과대 대표는 어떻게 보면 사회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계층간 유동성을 잃은 사회에서는 분열의 징조가 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2030 세대의 영끌도 그 이전세대들이 미리 겪었던 경험에서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누구가로 부터 배워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사실 저를 비롯한 5060세대들의 재산 증식의 대부분이 부동산에서 이루어졌고 또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 다는 생각들이 학습되어 전해지다보니 일부 선구자격 2030들이 치고 나가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인생은 모르는것이죠 오히려 앞으로는 영끌족들이 피눈물흘릴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인구라든지 정책변화들이 예전과는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빠르게 변화되고 있어서 어떤 선택이 맞을지는 좀 지나봐야 알 수 있을거 같아요. 각자 개인의 환경과 선택에 따라 결과를 받아 들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끌' 이라는 단어 조차도 낯설어서 무슨 신조어인가 했습니다. 제 남동생은 직장인이라 집을 뒤늦게 사서 잘 살고 있어요. 저도 제 명의의 조그만 집이 있지만, 집값이 지금처럼 높았다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아무튼 저도 2030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주택 정책을 하루속히 기대합니다.
@멋준 님, 네, 맞습니다. 그리구 대출도 100프로 나오지 않잖아요🙂 기본 시드머니가 몇억은 있어야 하고 최소 억소린 나야 하는데, 그 돈을 어디서 끌어오나요? 누구는 ‘필요하면 다 주변에서 도와주셔’라고 했어요. 아마 가족이겠지요? 영혼을 바치면 끌어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저는 무엇을 바쳐도 못 끌어오거든요…! 빚 없으면 다행이죠.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영끌해서 집을 샀다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려면, 그정도 돈을 대출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일텐데, 그 얘기를 마치 모든 청년층이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했었네요. 현상 예시를 잘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준 님, 네, 맞습니다. 그리구 대출도 100프로 나오지 않잖아요🙂 기본 시드머니가 몇억은 있어야 하고 최소 억소린 나야 하는데, 그 돈을 어디서 끌어오나요? 누구는 ‘필요하면 다 주변에서 도와주셔’라고 했어요. 아마 가족이겠지요? 영혼을 바치면 끌어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저는 무엇을 바쳐도 못 끌어오거든요…! 빚 없으면 다행이죠.
상층 계급이 과대 대표되는 현상. 말씀하신 것 처럼, 도움이 될 계층의 이야기들을 눈처럼 굴리는 게, 하층민의 삶을 주목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누군가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네요.
예를 들면, 어떤 팀이 있다고 했을 때, 팀 내 에이스의 불평을 들어주는 편이 팀 내에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불평을 들어주는 편 보다 훨씬 단기적으로 팀의 생산성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랄까요. 사회의 동력을 기능적인 면 또는 물질적인 면에서 조명하면 상층의 생산력은 하층을 훨씬 윗 돌 테니,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편이 어떻게 보면 더 생산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판단이 굳이 특정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능력 주의' 라는 암묵적인 합의 아래에 우리 모두에게서 이루어 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능력 주의' 아래에서 더 가진 사람은 당당한 반면, 덜 가진 사람은 마치 패배자인 것 마냥 위축되기 마련이니.. 공론의 장에서 더 큰 목소리로 들리는 것은 더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뿐만 아니라, 사회 대부분을 이루는 중간 층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기도 하구요. 계층 간 유동성이 줄어들 수록, 자신을 윗 계층에 편입 시키고자 하는 욕구와, 밑 계층과 구별하고자 하는 욕구가 동시에 강해질 테니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덜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껏해야 연대 또는 측은지심의 선에서 다뤄지는 정도인 것 같아요. 이들의 발언은 '구질구질하다' 또는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다'라는 비판으로 수면 밑으로 잠겨 버리기도 하구요.
상층 계급에 대한 과대 대표는 어떻게 보면 사회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계층간 유동성을 잃은 사회에서는 분열의 징조가 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2030 세대의 영끌도 그 이전세대들이 미리 겪었던 경험에서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누구가로 부터 배워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사실 저를 비롯한 5060세대들의 재산 증식의 대부분이 부동산에서 이루어졌고 또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 다는 생각들이 학습되어 전해지다보니 일부 선구자격 2030들이 치고 나가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인생은 모르는것이죠 오히려 앞으로는 영끌족들이 피눈물흘릴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인구라든지 정책변화들이 예전과는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빠르게 변화되고 있어서 어떤 선택이 맞을지는 좀 지나봐야 알 수 있을거 같아요. 각자 개인의 환경과 선택에 따라 결과를 받아 들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영끌해서 집을 샀다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려면, 그정도 돈을 대출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일텐데, 그 얘기를 마치 모든 청년층이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했었네요. 현상 예시를 잘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존의 통계적 착시(?)라는 생각이 들 때가
평균적으로 2030의 소득수준은 높을 수 없는데 통계안에 포함되는 숫자를 인구수대로 나눠본다면 절대 수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끌이라는 신조어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게 확인되긴 합니다.
그리고 상층에서 존재할 만한 담론들만 확대 재생산되는 느낌은 비단 부동산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삶 모든 부분에서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단적으로 호캉스~풀파티~감성__ 같은 꽤나 먼 나라에서나 존재할 법한 문화생활들을 항유할 수 있는 2030이 얼마나 많을까요?
30중반에 해당하는 제 입장에선 정말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영끌해서 생존하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친구는 없다는 말이 가슴을 때리는 아침입니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없는 가을 하늘이 펼쳐지고 ~~따스한 커피 한 잔 하고 시작해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