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왜 그럴까?

김모든
김모든 인증된 계정 · 모든 연결에 관심이 많습니다
2023/02/11


*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본 후 원작을 다시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과 체홉의 『바냐아저씨』. 이 중 하루키 단편집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입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2014년 작품으로 하루키의 최신작은 아닙니다.

@김모든 @김재아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다 탄식했다.
'도대체 하루키는 왜 이러는가?'
하마구치 류스케가 각색을 원작보다 잘했다. 그런데 하루키는 왜 이런 식인가? 이것은 그의 책에 대한 고상한 리뷰가 아니다. 하루키 소설을 지금까지 단편 포함 적어도 50여 편 이상은 읽어왔다. 그가 써온 글 중에 절반 정도 읽었지, 다 읽은 것은 아니라서 논문처럼 객관적인 글은 아니다. 그저 내가 읽은 범위에서 하는 문제제기다.

하루키 소설의 매력이자 단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대개 심각하게 고뇌하지 않는다. 그의 인물은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최대한 가볍게 살아간다. 그것이 하루키 스타일이다. 그래서 처음 그의 소설을 접했던 2000년대 초반 한국 독자들은 열광했다. 무엇이든 뜨거운 한국 독자들에게 하루키 스타일은 낯설고 세련된 감각이었다. 서로 다른 메이저 출판사에 근무하는 지인들에게 한때 하루키의 선인세가 수십 억이었단 말을 들었다. 더불어 요즘은 하루키의 인기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말도 들었다. 하루키는 이제 나이 들었고(하지만 난 그의 소설이 여전히 젊다고 생각한다), 그의 독자들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그렇다면 젊은 층 새 독자가 유입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다. 삶을 가볍게 살아가는 그의 주인공이나 문체는 요즘 독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요즘은 인기 래퍼들도, 드라마 주인공들도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쿨하게 살아갈 거야!'
하고. 실제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타일은 그렇다. 그러니 긴 소설을 읽어가며 이런 스타일을 흠모할 필요가 없다. 그의 가벼움이 더 이상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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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김재아란 필명으로 SF장편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을 썼다. 과학과 예술, 철학과 과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잇는 걸 즐기는 편이다. 2023년 <이진경 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을 냈다. ESC(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 과학문화위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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