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이들은 어른이 된다
아이들이 갯가에서 멱을 감고 노는 동안, 어른들은 청어를 굽거나 화투를 친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그 부재의 바다는 언제나 무청처럼 컬컬한 목소리로 해안에 선 나를 부르고. 어슴어슴 바다를 향해 기어잠겨드는 내 귀에도 오디세우스가 제 몸을 돛대에 묶고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던 사이렌의 노랫가락 같은 것이 들렸다. 그것은 부우 부우 하고 울던 뱃고동 같은 것이었고 해무를 걷고 나타나던 날치떼 같은 것이기도 했다. 보이는 소리... 그것이 끝날 즈음 무언가 시커멓고 무서운 것이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을 회억하자면 대강 이런 정서가 된다. 이상하여라. 나는 한 번도 바닷가에서 산 적이 없고, 정작 뱃고동이라곤 어느덧 나이 들어 거웃이 시커멓게 자란 뒤로 울릉도와 홍도를 갈 때를 빼곤 별반 들어본 적이 없다. 옹진반도에 사는 아이가 설악산 용아장성릉을 오를 때 느낄 법한 두려움처럼 나 또한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데, 왜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바다를 겹쳐 떠올릴까. 지방도시의 변두리, 육니오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고단한 살림을 풀어놓은 곳, 삼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그 곳은 그러나 어엿한 도시임에도 바다라니... 왜 그럴까...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마흔 둘이셨다. 두 팔에 아로새겨진 알통과 쩌렁한 웃음소리는 그이가 시방 한참 한 재산을 만드는 중인 견실한 목수임을 알게 해 주었다. 그랬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 자라던 그 몇 해가 당신께는 거리낄 것 없이 탕탕한 시절이었음이 분명하다. 집을 짓고 전화를 놨으며(그것도 백색전화를!) 땅을 사들이고 다방을 열었다. 아들 셋 딸 셋의 자식들은 아침마다 모이주세요 입을 벌리는 제비 새끼처럼 가방을 메고 들고 한 줄로 늘어서서 돈 달라고 손을 벌렸다. 당신은 호탕하게 지갑을 열어 너희들 돈주는 재미로 산다고 웃었다. 탕탕한 시절이었다. 나는 막내의 지위를 남용하여 아버지께 재롱을 부렸고, 형제들은 막내 동생 덕에 센베이 과자를 먹었다. 오도독 오도독. 센베이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