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서트 ] 2023. 10. 20. SPO; 코른골트, 차이코프스키(협연 최하영), 베를리오즈

이영록
이영록 · Dilettante in life
2023/10/24
  서울시향은 20일(금) 롯데콘서트홀에서 다음 작품으로 연주했다.

1. 코른골트; 슈트라우스 이야기(Tales from J. Strauss Jr. for orchestra), op.21
2. 차이코프스키; 로코코 주제 변주곡 op.33 - 협연 최하영(vc)
3.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op.14a
  지휘; 파비앙 가벨(Fabien Gabel)

  지금은 최하영이 한창 '뜰' 때다 보니 팸플릿엔 최하영 이름밖에 안 보일 지경이다. ㅎㅎ

  코른골트의 작품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주요 선율들을 - 황제 왈츠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는 물론 포함) - 따서 포푸리로 만들었다. 작곡가 자신도 흥미거리로 가볍게 쓴 곡이기 때문에 이걸 중심으로 얘기할 것은 별로 없다. 그래도 원곡보다는 좀 분위기가 진지해진 느낌.
 
  협연자 최하영은 좀 기대가 있었다(유투브에서도 클립 두엇 들어 보았으나, 다 아시다시피 녹음은 실제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주자가 맞았다; 2층 중간에서도 충분히 들리는 약음부터 깨지지 않는 최강음 하며, 어렵고 빠른 패시지에서도 음을 뭉개지 않는 기교까지 다 좋다. 최소한 최근에 어떤 협주곡으로 들은 모 첼리스트보다는 훨씬 인상에 남는다(그 분이 그리 못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앙코르로는 바흐 무반주 모음곡 3번의 전주곡을 들려 줬는데, 현대 악기로 연주한다면 좀 더 비브라토 넣어도 무방하다 싶다.
  나중에 들으니 카덴차 연주 중 가까운 바이올린 주자의 현이 끊어져 다시 이으며 약간의 소음이 났다는데, 내가 앉았던 2층 중간(건물 기준 10층)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뜨는 연주가가 와서 그런지 빨리 표가 없어지고 통상보다 비싸서 그냥 2층 중간을 골랐는데 이런 좋은 점도 있다(?!).

  환상 교향곡에서  지휘자가 고른 것은 초판이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연주에서는 오피클라이드 대신 튜바밖에 사용하지 못하니까, 실제 연주에서 초판과 최종판 중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2악장의 피스톤 코르넷(Cornet a piston)이다. 왈츠 선율 뒤에서 뭔가 화려한 대선율이 들리면 코르넷(=코넷)이다. 이 부분은 최종판에서 삭제되었다.

  * 초판; https://youtu.be/sK-D9IpmclQ?si=FJTIDDPCLotAvIVr&t=1172 시작 후 조금 있다가 아래 캡처의 흰색 화살표로 표시한 분이 부는 것이 코르넷이다. 피스톤 밸브기 때문에 이전에는 트럼펫과 기본이 같았으나 지금은 트럼펫에 로터리 밸브를 쓰는 경우가 많아져서 상황이 바뀌었음. 그러나 전반적으로 현재 둘의 차이는 미미하기 때문에 굳이 코르넷을 동원하는 경우는 적음. 이번 연주회에서 뒤에 들은 얘기는 트럼펫 주자를 객원으로 한 분 데려왔다고 하는데 그 분이 코르넷 독주를 맡으신 모양.
source; https://youtu.be/sK-D9IpmclQ (동영상 19:49)
  * 최종판; https://youtu.be/5HgqPpjIH5c?si=Uq-5-hjkxoR6eCTo&t=1166
  오래 된 유명한 녹음들은 대개 최종판이고, IMSLP에 올라와 있는 '원전판'도 그렇다. 유투브 클립들도 대개 최종판이고 초판은 드물다. 음반 중에는 메타(Decca), 마르티농(EMI; Warner), 마젤(Telarc) 등이 초판이다.

  그 외에 다른 선택이라면, 이 곡에는 주자가 off-stage 연주하도록 지정된 곳이 둘 있다. 3악장 처음 오보에와, 5악장의 벨(bell; C음과 G음)이다.  지휘자 가벨은 벨도 원본대로 무대 밖에서 연주하도록 했기 때문에 - 오보에는 많은 경우 off-stage를 지키나 벨은 그렇지 않은 수가 많다 - 주자가 나갔다 오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벨의 지휘는 템포 변화를 억제하면서 전체적으로 중간 정도였는데, 내 귀를 끌었던 점은 지휘보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 근래 짧게나마 블로그에 리뷰라도 썼던 것은 2014년 12월 26일 정명훈 지휘 SPO, 2019년 7월 4일 헤르무스 지휘 SPO, 올해 7월 14일의 라이프 지휘 KBS 교향악단 정도다.  SPO건 KBS건, 4년 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하다. 2019년과 자리 차는 좀 있었으나, 그 브루크너보다 이 환상교향곡 쪽이 전반적으로 더 나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명훈이 떠난 후 SPO가 상당히 고전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2019년 그 정도는 아니었음을 느꼈으며 지금은 더 나아졌음을 확인했다. 앞 리뷰에서 썼듯이 KBS 교향악단은 내 기대보다 훨씬 더 좋았고 기술 면에서 두 악단의 차는 눈 감고 들으면 잘 모를 것이다. 일단 악기군 안에서만이 아니고, 다른 악기군들끼리도 프레이즈 중간 및 끝을 이어받을 때 이음매가 자연스럽다. 드디어 이 정도가 우리 나라 1급 오케의 '기본'으로 정착했다 생각할 수 있겠다.
  레코드로만 들으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오케스트라 연주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2014년의 정명훈 지휘 베토벤 9번 때도 이게 자연스럽지 못했던 부분이 자주 있었는데, 이 연주회는 SPO를 근래 들은 중 가장 상태가 좋았다. 환상 교향곡이 연주하기 쉽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불안감을 준 일이 거의 없었으니 이 정도라면 SPO의 연주회를 전보다 훨씬 편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지휘자 공인지 아닌지는 다른 지휘자의 연주회에 가 봐야 알겠지만. ㅎㅎ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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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夫란 nick을 오래 써 온 듣보잡입니다. 직업은 공돌이지만, 인터넷에 적는 글은 직업 얘기가 거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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