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뷰
음식에서 찾는 한국인의 정체성
한식이 묻는다. 한국인은 누구냐고.
에디터 노트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에서 음식은 그저 ‘살기 위해 먹는 것’일 뿐이었다.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국가가 앞장서 쌀 소비를 제한하며 밀가루 음식, 서양식을 장려한 때도 있었다. 그땐 굶을 걱정 없이 삼시세끼 먹는 자체가 부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미식 열풍이다. 맛집, 미슐랭, 먹방 같은 용어는 일상이 됐고 파인 다이닝, 오마카세 같은 고급 외식도 인기를 더해 가고 있다. 한국인은 더 이상 뷔페, 레스토랑 정도의 단어에 위축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외국에서 한국 음식도 이런 지위를 다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한식당의 수는 2009년 9,253개에서 2017년 33,499개로 급격히 증가했고, 평균 식사 가격 역시 63달러로 프랑스 음식과 동급으로 분류된다.
이런 한식의 화룡정점은 바로 궁중요리. 입과 눈을 모두 즐겁게 만드는 궁중요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등재돼 있고, 한국 정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10년 이상 노력해왔다.
그러나 보류 상태다. 사유는 바로 정체성과 연속성의 부재. 궁중요리가 한국인 전반의 문화를 상징하는지 모호하고, 또 사회에서 연속성 있게 이어져 왔는지도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음식으로서는 분명 뛰어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
이는 여러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대체 무엇을 ‘우리’의 것으로 부를 수 있는가? 끊임없이 국경이 변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온 세계에서 완전한 고유성이나 연속성이 애초 가능한가? 그에 앞서 국가는 무엇이고 우리는 누구인가?
뉴욕타임스의 이 심도 깊은 기사엔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실마리가 담겨 있다. 한식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인 그리고 세계인의 정체성을 묻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