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면서도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2/02/28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직장에 거짓말을 한게 되었다. 토일월화는 목동에서 수업을 한다. 수목은 은평에서 수업을 한다. 금요일엔 시험지를 만든다. 입사의 전제가 겸업 금지였는데, 또 그러겠노라 하고 말았는데, 쉬는 날 학원 몰래 은평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돈벌이의 화신,같은 건 아니고 다만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원래 맡고 있던 학생들을 이번 겨울방학까지만 봐달라는 얘기를 듣고서 또 그러겠노라 하고 말았다. 결국 이리 되었다.

 무슨 대단한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 그럴 리는 없고, 뭐랄까, 그리 안될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해서 그렇다. 너희들은 나를 만나면 바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을 바꿀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그걸 기대한 적 없고, 이때까지 그랬던 적도 없다. 일개 강사가 어떤 학생의 삶의 궤적을 바꿨다면 그건 좋아할 게 아니라 걱정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미련마저 없다면 굳이 이 짓을 왜 하겠는가. 당신들이 바뀔 거라는 믿음도 없이 떠든다면 그건 그냥 벽에다 대고 떠드는 거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토록 미련한 건 지극히 유치한 이유에선데, 나는 내가 '살면서 스쳐지나가는 사람' 정도로 취급되는 게 싫었던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배역이란, 어느 성공한 사람의 고단했던 유년 시절에 스쳐지나간 조연 26 정도. 그러니 어른은 어린이들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네 인생에 나도 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줘. 어른이란 조금 더 열심히 떼쓰는 외로운 존재. 그리 한심한 건 줄 알았다면 빨리 어른이 되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증오하다보니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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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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