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임현규
임현규 · 촌로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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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자연)에는 언어 없는 자들의 함성이 가득하다. 
 
 
현대 도시 생활에 찌든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연-숲을 동경한다. 특히 요즘은 웰빙이니 힐링이니 하면서 일종의 삶의 에너지를 자연-숲에서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그래서 이제 숲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곳을 넘어 현대인들에게 삶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곳이요, 아픔을 치유하는 곳으로 승화됐다. 잠깐만이라도 숲 속에서 느끼고 체험하며 자신의 삶으로 받아 들이는 활동들이 각광을 받는 이유다. 이런 ‘숲의 삶’을 권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숲을 찬양한다. 도토리의 생명력을 신비화하고 피어나고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배우자고 한다. 나아가 그 속에서 욕심에 쩔은 우리 인간의 사회적 삶을 비판한다. 그리 살지 말 것을 강권한다. 그러다보면 일반 사회인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심정에서 옳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삶을 용기 있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버티는 패배자 심정이 되기 십상이다. 조그만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붉은 뿌리를 내고 숲의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순간은 경이롭다.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누가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아도 이미 제 몸에 간직한 생명의 씨앗으로 떡잎을 내고 줄기를 키워 천 년을 사는 떡갈나무로 성장하는 서사는 장엄하다. 그 앞에 마주 선 인간은 절로 머리가 숙여져야 한다. 숲에서,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 그런데 뭘 배워야 하지?
 
모든 생명은 자기답게 살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자기다운 게 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기다움'이란 아마도 텔로스(telos; 목적, 본질)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목적론적 논증을 다음과 같이 구성한다. 즉, 「도토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도토리에게 최선의 것이 도토리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도토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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