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진

배윤성
배윤성 · 에세이집 '결론들은 왜 이럴까'를 냄
2023/10/10

  1970년대, 우리 집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당연히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없었다. 엄마는 빛나는 순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우리에게 입힐 새 옷을 사거나 마당에 꽃이 피면 “사진을 찍어둬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먼훗날, 내가 어린 시절을 궁금해 할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을 염두에 두었다. 과거를 되짚어 보고 싶을 때, 사진만큼 결정적인 단서가 있을까. 

  사진을 직접 찍거나 사진기를 다룰 자신이 없던 엄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집 아저씨가 캐논 카메라를 구입한 후,  아저씨를 전속 사진사로 동원했다. 인화해야 하는데 필름이 남아있으면 엄마가 부탁하기도 전에 옆집  아줌마가 아저씨를 대동하고 우리 집에 문을 두들겼다. 
“5장 남았어.”
당시에는 24방, 36방 등 컷수가 정해진 필름을 끼워 사진을 찍던 시절이었다. 
“그럼 5장 다 찍어줘, 남는 것은 사진 뿐이잖아요? 호호.”
  엄마는 아무리 절실해도 시간이라도 지나면 곧 잊혀진다는 것, 우리의 어린 시절을 증언해 줄 자신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해 두는 것이 양육자의 중요한 과업이라는 것도. 컬러로 인화해 온 사진을 사진첩에 꽂아 두고 틈틈이 들여다보는 것이 엄마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널 보고 서양 아이냐고 했어. 눈이 움푹 들어가서.”
  사진 속의 평범하게 생긴 한국여자 아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때 국을 쏟아서 옷을 갈아입혔는데 바로 똥을 싼 거야.”
  사진을 찍을 때의 상황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연관된 일들이 딸려 오기 마련이다. 과거의 일들을 곱씹다 보면 지나간 일들이 희미해질 겨를이 없다. 땅이 다져지듯 기억도 튼튼히 다져진다. 
    또 하나의 우주인 자식들이 커나가는 마술적인 상황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롤을 앞머리에 감고 있는 사진, 동생 머리채를 잡아끄는 사진, 피아노를 치는 사진, 학교에서 상을 받는 사진 등 변화와 성장 과정이 사진첩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연출 사진인지...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철학, 문학을 전투적으로 공부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생활을 하다보니 내가 축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어요.
17
팔로워 9
팔로잉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