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포옹은 용서이고 나지막한 사랑인데...

백혁현 · 오래된 활자 중독자...
2024/07/09
들킬 염려가 없는 은신처의 문고리를 만지작거린다. 나는 닫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열고 싶은 것인지, 허락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되돌려보내고 싶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어느 때 나는 문외한이다. 접촉은 유령처럼 희미하고 모험은 심해의 바닥처럼 모호하다. 오랫동안 절벽 끄트머리의 바람, 한 번 오고 나서 다시 가지 않는 바람이 나를 가로질렀고 좁고 긴 하루가 그때 시작되었다.
아직은 우리 집
 새벽이 잠 깨어 물 한 모금을 마시는 자유
 얼마나 광활한가!
 아직 흐르지 못한 시간들이 고여 있는 시간, 입을 열면 하얗게 젖은 입김이 만들어내는 공간, 뉘앙스의 한 가운데로 돌진하는 안이한 모습으로 가득해도 좋았다. 나는 태어난 적이 있고 당신은 죽은 적이 있지만 우리 삶의 교차로에서는 고작 신호 대기음만 짧게 울렸을 뿐이다. 우리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우리가 있어 두 사람이 모두 살았거나 죽었거나 다시는 부인하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이 세상 모든 눈동자가 옛날을 모셔와도
 마시고 만져지면서 닳아지는 물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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