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포옹은 용서이고 나지막한 사랑인데...
아직은 우리 집
새벽이 잠 깨어 물 한 모금을 마시는 자유
얼마나 광활한가!
아직 흐르지 못한 시간들이 고여 있는 시간, 입을 열면 하얗게 젖은 입김이 만들어내는 공간, 뉘앙스의 한 가운데로 돌진하는 안이한 모습으로 가득해도 좋았다. 나는 태어난 적이 있고 당신은 죽은 적이 있지만 우리 삶의 교차로에서는 고작 신호 대기음만 짧게 울렸을 뿐이다. 우리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우리가 있어 두 사람이 모두 살았거나 죽었거나 다시는 부인하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이 세상 모든 눈동자가 옛날을 모셔와도
마시고 만져지면서 닳아지는 물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