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벌어지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김훈, 《허송세월》

백혁현 · 오래된 활자 중독자...
2024/06/21
“책을 읽다가 눈이 흐려져서 공원에 나갔더니 호수에 연꽃이 피었고 여름의 나무들은 힘차다. 작년에 울던 매미들은 겨울에 죽고 새 매미가 우는데, 나고 죽는 일은 흔적이 없었고 소리는 작년과 같았다. 젊은 부부의 어린애는 그늘에 누워서 젖병을 물고 있고 병든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온 노인은 아내에게 부채질을 해 주고 물을 먹여 주고 입가를 닦아 주었다.” (p.127)
 48년생이니 김훈의 나이가 칠십대 중반이다. 작가의 산문 여기저기에서 그 나이가 짐작된다. 나이 먹었음을 부러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랑 삼지도 않는다. 계간 《문학동네》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라는 제목의 연재가 시작된 것이 1994년이니, 김훈은 기자 이후 작가라는 직업으로도 삼십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 긴 세월 작가로 밥벌이를 하면서 느낀 바에 대해 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주어와 술어를 논리적으로 말쑥하게 연결해 놓았다고 해서 문장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주어와 술어 사이의 거리는 불화로 긴장되어 있다. 이 아득한 거리가 보이면, 늙은 것이다. 이 사이를 삶의 전압으로 채워 넣지 않고 말을 징검다리 삼아 다른 말로 건너가려다가는 허당에 빠진다. 허당에 자주 빠지는 자는 허당의 깊이를 모른다. 말은 고해를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주어와 술어 사이가 휑하니 비면 문장은 들떠서 촐싹거리다가 징검다리와 함께 무너진다. 쭉정이들은 마땅히 제 갈 길...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책/영화/음악/아내/고양이용이/고양이들녘/고양이들풀/Spitz/Uaral/이탈로칼비노/박상륭/줌파라히리/파스칼키냐르/제임스설터/찰스부코스키/기타등등을 사랑... 그리고 운동을 합니다.
77
팔로워 4
팔로잉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