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 7월 8일 페리(Matthew Calbraith Perry) 제독의 동인도 함대 소속 함대 4척(증기선 2척 포함)이 요코하마(정확히는 당시 지명으로 우라가浦賀, 요코하마시 남쪽으로 붙어있는 요코스카시)에 도착해 개항을 요구했다. 페리는 막부에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돌아갔다. 지방 다이묘의 반란을 막기 위해 대형 함선 등의 제조를 금지한 막부 정부는 페리가 끌고 온 불린 증기선 군함, 일본에서 쿠로후네(흑선,黒船)라 불린 위용에 크게 놀랐다. 7개월이 지난 1854년 2월 13일 페리는 9척의 배로 다시 돌아왔고 흔히 막부는 개항을 약속했다. 1854년 3월 31일 미·일 화친 조약을 체결했고, 1858년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며 막부 정부는 오랜 쇄국 정책을 끝냈다.
*위의 두 삽화를 보면 전형적으로 서구에서 발전한 표현의 방법과 일본에서 발전한 표현의 방법의 차이를 볼 수 있다. 페리 제독을 수행한 화가인 독일계 미국인 빌헬름 하이네의 판화는 석판화로 섬세한 묘사를 보여준다. 빌헬름 하이네는 페리 제독의 항구 상륙, 협상장면 등을 마치 사진처럼 정확하게 묘사했다. 반면, 일본에서 나온 카와라반(瓦版, 에도 시대에 서민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