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목소리

죄고 · 돈을 주세요
2023/05/29
솔직히 말해서와 부끄러운 줄 알라는 진부한 표현이 됐다. 요샌 다들 그렇지만 다른 말들보다도 유독 낡아 보인다. 이 도움닫기와 착지는 깊숙한 내면의 진심을 상정한다. 깊숙한 내면의 진심은 깊숙한 내면의 눈으로 감별할 수 있고 이 깊숙한 공모가 그 유통기한을 연장해 왔다. 공모의 깊숙함은 곧 은밀함이고 그 말할 수 없는 가상의 영역에서 권력이 공명하며 불어난다. 은밀하고 깊숙한 사이는 힘 있는 사이다. 은밀하고 깊숙하게 배당하면서 힘이 머리를 든다. 당신도 은밀하고 깊숙한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어서 권력은 공고하다. 솔직히 말해서와 부끄러운 줄 알라는 사적 환상을 공적 언명의 연료로 길어온다. 표상하는 내밀성과는 딴판으로, 발설된 이 말들은 대부분 공적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라고 도움닫으면 다음에 연계되는 말은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별수없으니 각오하라는 예고다. 부끄러운 줄 알라며 착지할 때 이글이글 불타는 두 눈 곁으로 다른 눈들이 돋아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말이 뿌리 없이 떠도는 매체 환경 속에서 은밀하고 깊숙한 데 근거 두는 말하기는 낡았다. 낡았지만 몸에 익어서 회로는 반복된다. 고착이다.

극장은 철 지났다. 왜 아직까지 이런 곳이 있는 걸까. 좀 평평하기라도 했으면 다른 용도로 써먹을 수 있을 텐데 모두가 계단에 줄맞춰 앉아 별수없이 한쪽을 봐야 하니까 그쪽엔 시선을 붙잡아둘 스펙터클 또는 그에 준하는 흡인력의 교주가 필요하다. 이제 저마다 주머니에 스크린이 있어서 지하철 객실이 더 메가플렉스 같고, 불 꺼진 극장에서는 오히려 개인 스크린이 각자 호출하고 유혹하는 원심력 탓에 관객의 시선이 이탈하기 일쑤다. 투자사에서 돈을 받아 영화를 찍고 극장에서 개봉하면 관객들이 오는 이 회로는 익숙해서 작동할 뿐 극장의 특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창동이 마블 영화를 일컬어 영화의 변종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영화도 시대와 환경의 산물일 뿐이니까 시대와 환경을 따라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극장 스크린과 결부된 영화는 육중한 산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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