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된 남편

배윤성
배윤성 · 에세이집 '결론들은 왜 이럴까'를 냄
2023/11/03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내는 사람은 남편이었고 빨갛게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이래? 뭔 일 났어?”

내 머릿속에서 영화 내용이 싹 사라졌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회사 동료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인 걸까. 아님 작년에 산 주식이 깡통이 된 걸까. 가끔 가슴이 결린다고 하더니 암 선고라도 받은 걸까. 
생각해 보니 요새 남편이 시무룩해 있었던 적이 많았다. 내가 관심을 쏟지 않는 사이 뭔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드라마를 보다 아무도 몰라주는 설움이 복받쳐 갑자기 울음이 터진 게 분명했다. 
나는 텔레비전 음량을 줄이고 남편에게 바짝 다가 앉았다. 

“왜 소리를 줄여?”

남편은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짜증 섞인 소리를 질렀다. 이건 뭐지?

“지금 저거 때문에 우는 거야? 드라마 때문에?”
그제야 남편은 눈물을 닦으며 휴지를 찾아 코를 팽 풀었다. 
“쟤는 어떻게 저렇게 사냐? 아휴.”

 나는 그가 하는 짓이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어 턱을 괴고서 뚫어져라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그제야 내 눈빛을 의식했는지 민망해하며 한마디 했다. 

“당신은 어쩜 그렇게 감정이 메말랐어? 같이 울고 웃고 해야 그게 사람이지.”

아, 시간은 사람을 어쩜 이리도 다르게 바꾸어놓는가. 늙으면 생각, 취향, 입맛까지도 바뀐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같이 울고 웃고’ 이런 말이 남편 입에서 흘러나오다니. 같이 울기는커녕 내가 울면 우는 나를 보며 웃는 사람이었다. 공감이란 부분적으로는 자신과 티인들간의 기본적인 혼동에 기인한다고 했다. 

대부분 집에서 그렇듯 남편은 스포츠와 뉴스, 다큐멘터리를, 나는 드라마와 가요를 주로 봤다. 어느 순간부터 극명한 취향 차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밤 10시 드라마 시간이 되면 그는 슬금슬금 텔레비전 앞의 소파로 와 아예 쿠션을 가슴에 껴안고 소파에 누워 자리를 잡았다.
 어떨 때는 채널을 돌리지도 못하게 하고 떠들면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귀찮게 왜 내 자리를 넘봐? 저쪽으로 좀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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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문학을 전투적으로 공부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생활을 하다보니 내가 축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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